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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과 악당 : 난 너고 넌 나야 (feat. 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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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조커
다크나이트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유명한 가수의 유명한 노래죠. 잔뜩 힘 뺀 목소리로 ‘난 너고 넌 나야~ 넌 나고 난 너야~’ 이렇게 선언하며(?) 시작하는 노래. 우습게도 이 노래를 듣고 주인공과 악당의 관계를 가장 먼저 떠올렸습니다. 슬픈 일이죠.
어찌 보면 주인공과 악당의 관계는 꽤나 로맨틱합니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You complete me’ 조커가 배트맨에게 하는 대사죠. 사실 이 대사는 이보다 더 오래전에 나온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달려가 고백하는 장면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목소리마저 젊은 톰 크루즈
<제리 맥과이어>에서의 이 대사는 로맨틱하지만, <다크 나이트>에서는 무척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조커의 얼굴이 무섭기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상황을 한 번 볼까요.
(주의 : 이미지를 클릭하면 매우 깜짝 놀랄 수 있습니다)
#취조실 고든 경감이 나가고 불이 꺼지면, 조커 뒤로 배트맨이 보인다. 배트맨이 조커의 머리를 책상에 내리찍는다. 조커 머리부터 때리지 마. 멍해지면 고통 못 느껴. 배트맨, 조커의 손등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조커, 전혀 아파보이지 않는다. 조커 봤지? 배트맨 날 원했지? 여기 있다. 조커 어떡할지 궁금했는데 실망 안시키더군 5명이나 죽게 놔뒀어. 그리고 하비한테 짐을 지웠지. 좀 심했다고 봐 배트맨 하비 어딨어? 조커 갱들은 네 놈만 없으면 지들 세상인 줄 아는데, 어림없는 소리. 네가 모든 걸 바꿔놨어. 영원히. 배트맨 그럼 왜 날 죽이려 하지? 조커 (웃으며) 누가 죽인대? 너 없이 누구랑 놀아? 어줍잖은 갱 놈들? 아니 싫어! '넌 나를 완성시켜 (You complete me)' 배트맨 넌 인간 쓰레기야 조커 경찰처럼 굴지 마. 넌 저들하곤 달라. 저들한테 넌 그저 나같은 별종일 뿐이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다크 나이트>의 취조실 장면 중 일부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사 ‘You complete me’가 나오는 맥락을 확인할 수 있죠. 저는 이 여기가 주인공과 악당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다크 나이트>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이야기에 적용된다고 생각해요.

난 너고 넌 나야

간단하게 복습을 해 볼까요. 지난 시간에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악당은 방해하는 세력 전체를 대변하지 않으며, 주인공을 방해하는 세력은 악당뿐 아니라 가난이나 화성 같은 존재도 포함된다는 내용이었죠.
[방해하는 세력 ⊃ 악당] 이렇게 기억하시면 되겠네요. 악당은 방해하는 세력 중 일부일 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당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방해하는 세력 = 악당]이라는 오해가 생길 만큼, 많은 이야기에서 무시무시한 악당이 등장하여 주인공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늘은 매력적인 악당이 만들어지는 원리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해요.
(다시 복습) 주인공은 욕망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에게 저주를 내려야 한다고도 했죠. 반드시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악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악당은 욕망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에요. 주인공과 똑같아요. 그리고 주인공과 악당은 서로에게 [방해]가 되는 존재입니다. 주인공이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면, 악당이 나타나 주인공을 방해합니다. 악당이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면, 주인공이 나타나 악당을 방해하고요.
그러니까 제가 지코의 노래를 듣고 주인공과 악당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악당에게는 주인공이 곧 악당이 되는 셈이니까요. 그리고 이 관계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영화 <다크 나이트>의 조커처럼 이런 대사를 할 수 있는 것이죠. “You complete me (넌 나를 완성시켜)”
배트맨은, 고담 시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욕망) 배트맨이 되어 악당들을 때려잡는다 (행동) 절대 살인하지 않는다 (행동) 절대 자신의 본 모습(브루스 웨인)을 드러내지 않는다 (행동) ​ 조커는, 고담 시에 절대적인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욕망) 온갖 범죄를 일으킨다 (행동) 배트맨으로 하여금 살인을 하도록 한다 (행동) 배트맨의 가면을 벗기고자 한다 (행동)
배트맨과 조커는 둘 다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동들을 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서로 충돌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는 것이죠. 아주 노골적인 갈등이 발생하고, 온갖 사건들이 발생하게 되죠. 이런 구조를 갖추게 되면, 악당을 주인공의 자리에 놓아도 이야기가 성립합니다. 매력적인 악당은,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때에도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돼요.​
이러한 구조를 극단으로 밀고 간 작품이 바로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입니다. 제목이 어벤저스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타노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이 영화는 ‘인피니티 스톤 전부를 모으고자 온 우주를 누비는 타노스의 액션 활극'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에요. 어벤저스 멤버들은 타노스를 방해하는 세력으로 등장할 뿐이죠. 새 도끼를 들고 나타난 토르가 끝판왕 정도 되겠네요.

You complete me : 넌 나를 완성시켜

다시 <다크 나이트>로 돌아올게요. 조커는 배트맨이 자신을 완성시킨다고 했어요. 그리고 배트맨이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별종이라고도 했죠. 사실 이야기에서 이 대화는 배트맨을 무너뜨리기 위한 조커의 작전 중 일부라고 볼 수 있어요. 조커의 이 작전은 꽤나 지독하고 고집스러워서, 결국 배트맨을 어느 정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해요. 조커는 배트맨을 타락시키는 데에 실패하지만, 하비 덴트를 타락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죠. 결국 배트맨은 조커를 저지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하비 덴트의 살인을 뒤집어쓰고 스스로 영웅의 자리에서 내려옵니다.
동시에 조커의 대사는 주인공과 악당의 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어요. 주인공이 어떠한 방해도 없이 자기 욕망을 실현한다면 그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악당이 자기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온갖 나쁜 짓을 하는데 아무도 막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재미있을까요? 주인공과 악당은 서로가 서로를 의미 있게 만들어 줍니다. 서로가 서로를 완성시킨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영웅적 면모를 지닌 멋진 주인공을 만들고 싶다면, 그에 상응할 정도로 멋진 악당을 만들어야 해요. 주인공과 악당 모두에게 욕망을 부여하고, 행동하게 만들고, 그것들이 서로 대립하게 만들어야 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갈등이 발생하고,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입장이 만들어지죠. 독자들은 이 싸움의 결말을 확인해야 하고, 끝까지 보겠죠.

좋은 편과 좋은 편이 맞붙어야 좋은 이야기가 된다

“가장 좋은 이야기는 좋은 편과 나쁜 편을 대립시켜서 나오지 않는다. 좋은 편과 좋은 편이 맞붙어야 좋은 이야기가 된다.” - 레프 톨스토이
톨스토이가 한 말이래요. 너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악당은 악당일 뿐 ‘좋은 편’은 아니니까. 솔직히 ‘좋은 편'이라는 것은 너무나 주관적인 판단이잖아요? 작가마다 독자마다 그 기준이 다를 수 있고요. 그러니 톨스토이가 말한 ‘좋은 편'을 ‘이해 가능한 입장' 정도로 해석하면 어떨까요. 악당에게 명확하고 이해 가능한 욕망을 부여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그가 하는 행동들이 그냥 ‘미친놈'의 행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합리적인 행동으로 보이도록 만들자는 거예요. 독자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상대적이죠.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현상을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어요. 그런 세상에서의 이야기가 선과 악을 쉽게 구분한 채 달려간다면, 그건 너무 게으른 창작 아닐까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에서의 배트맨은 그야말로 다크 나이트, 어둠의 기사에요. 따지고 보면 기사와 어둠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죠.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자기 존재에 의문을 가지고 끊임없이 고민해요. 나는 과연 정의인가, 나는 과연 고담 시의 질서와 평화에 기여하는 존재인가, 내가 믿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 고민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조커라는 매력적인 악당이었어요. 그러니 “You complete me.” 생각할수록 멋진 대사네요.
다음 이야기
Shin이 소개하는 좋은 이야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다크 나이트> 앤소니 루소, 존 루소 감독 영화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
글. Shin(김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마감'에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유 컴플맅 미."
편집. May(김미루) "그런 의미에서 저는 '원고'에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유 컴플맅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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