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편에 걸쳐서 하우스 호러 장르와 관련된 작품들을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이번 공모전에 응모하고자 준비하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사소한 조언들을 모았습니다. 제목에 공모전 꿀팁이라고 적어 놨지만 글쎄요, 꿀팁이 될지 잔소리가 될지는 여러분들이 판단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양한 변주는 권장하지만, 하우스 호러의 규칙은 꼭 기억하세요!
[하우스 호러 특집]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문장이 있었죠.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House)에서, 가장 위험한 사건(Horror)이 벌어진다. 하우스 호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이에요. ‘집'으로 은유할 수 있는 그 공간에서 무서운 일들이 벌어져야 하고, 주인공은 그 공간을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하죠. 공간은 반드시 대저택일 필요는 없어요. 아파트, 고시원, 집처럼 생활하는 일터 등 주인공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괜찮아요.
그리고 그곳을 불편하고 위험한 공간으로 만드세요. 심령 현상이 일어나거나, 귀신이나 악령이 등장할 수 있어요. 살인마가 있을 수도 있고, 가장 가깝고 안전하다고 믿었던 사람이 나를 위협하는 존재일 수도 있죠. 주인공은 그 공간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를 상대해야 합니다. 물리치려 할 수도 있고, 도망치려 할 수도 있죠. 결국 하우스 호러의 주된 갈등은 [주인공(들) vs 공간]의 갈등이에요. 이 구도가 보이지 않는 작품은 하우스 호러 장르처럼 보이지 않겠죠.
장편이 어렵다면 군상극이나 연작 구성을 고려해 보세요
호러 장르로 장편 소설을 구성하는 것이 어렵거나 낯설 수 있어요. 실제로 호러 소설 중에서는 장편보다 단편이 압도적으로 많기도 하죠. 단편이 익숙하고 장편이 어렵다면, 군상극이나 단편 연작의 구성을 고려해 보세요. 하우스 호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이라고 했죠. 하나의 공간에서 여러 명의 주인공이 여러 가지 사건을 겪는 이야기를 만든다면 자연스럽게 군상극이 될 수 있어요. 전건우 작가의 소설 <고시원 기담>, 넷플릭스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 영화 <주온> 같은 작품들은 모두 군상극 구성을 취하고 있어요. <컨저링>의 경우 영화 한 편으로는 군상극 구성이라 할 수 없지만, <컨저링 유니버스> 전체를 놓고 보면 군상극이라고 할 수 있구요. 퇴마사로 워렌 부부가 직, 간접적으로 등장하고, 모든 악령들 중 대장(?)으로 발록이라는 악마가 역시 직/간접적으로 등장해요. 유니버스 전체로 봤을 때, [워렌 부부 vs 발록]의 구도가 성립하는 것이죠.
물론 군상극 구성이 쉽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공통된 소재가 있어야 하고, 각각의 에피소드가 서로 긴밀히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해요. 모든 에피소드가 공유하는 하나의 사건이 있으면 더욱 좋겠죠. 결국엔 통일감이 느껴져야 해요. 각각의 에피소드가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이루는구나, 하는 느낌이요. 그래야 군상극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무서운 장면도 중요하지만, 이야기의 맥락도 함께 고려하세요.
호러 장르라면 당연히 무서운 장면을 연출해야 합니다. 주인공이 겪는 공포를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치밀한 묘사와 연출이 필수겠죠.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만, 호러 작품이 의도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야기의 맥락과 관계없는 무서운 장면이나, 맥락에 비해 터무니없이 끔찍한 묘사를 통해 불쾌감을 만들어내는 연출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그들이 하는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요. 귀신이나 악령, 살인마들도 마찬가지죠. 그들이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죽이려 한다면, 그 이유를 명확히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는 뜻이에요. [신스텔러 11회] 이야기의 논리 : 작가는 신(God)이 아니다 에서 자세히 설명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야기 속 인물의 행동은 [원인 + 결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죠. 귀신이나 악령, 살인마들도 마찬가지예요.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등장하는 것은 좋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무작위로 하는 인물이나 존재를 두고 ‘뭐 어때. 귀신이잖아? 사이코패스잖아?’ 하며 퉁치고 넘어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그냥 무서워 보여서' 등장하는 존재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공간에 등장하여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존재들에게도 그 존재의 의미를 꼭 부여해 주세요. 꼭 구구절절한 서사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그 존재가 하필 이 장소에 하필 어떠한 조건 하에서만 등장한다면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어요. 작가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고민해 주세요.
동시대의 이슈나 문제들을 이야기에서 다룰 수 있으면 더 좋아요.
하우스 호러 장르라면 당연히 동시대성을 지녀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냥 안전가옥의 ‘취향'에 대해서 설명드리고 싶어서 넣었어요. 안전가옥은 장르를 편식하지 않고, 소재와 상관없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리고 동시대의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하우스 호러라고 해서 다르지 않겠죠.
제가 이번 특집에서 언급한 작품 중에서도 동시대성을 다룬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요. [하우스 호러 특집 #04] 한국의 하우스 호러 소설들에서 다룬 작품들이 특히 그렇죠.
전건우 작가의 <고시원 기담>은 동시대 서울의 허름한 고시원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의 고민과 애환을 다루죠. <목련면옥>은 IMF 직후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빚쟁이들의 독촉에 시달리다 집을 떠난 주인공이 숙식이 제공되는 냉면집 ‘목련면옥’에서 일하게 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에요. 장은호 작가의 <천장세>는 시기와 장소가 특정되지는 않지만, 동시대 서울의 부동산 문제를 노골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배경을 갖고 있구요.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소개한 한국의 하우스 호러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동시대의 ‘부동산 문제’나 ‘청년 빈곤 문제'를 다루고 있네요.
‘호러 장르가 무섭기만 하면 장땡이지 무슨 동시대의 문제를 다루느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그냥 이렇게 대답할게요. 안전가옥이 그런 걸 좋아한다고. 제가 그런 걸 너무 좋아한다구요. (와 이 정도면 꿀팁)
충분한 자료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더욱 좋습니다.
얼마 전에 영화 <사바하>를 봤어요. 이것저것 할 얘기는 많지만, 시나리오의 깊이가 무척 풍부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아마도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정재현 감독이 자칭 ‘종교 덕후'라는 장점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우스 호러도 아닌 이 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사바하>에서 다루는 기독교, 불교, 한국 토속 신앙의 깊이가 무척 깊었기 때문입니다. 깊이 있는 자료 조사는 설득력 있는 디테일을 만들어내고, 그 디테일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무기가 되거든요.
여러분의 하우스 호러 작품에 등장하는 공포의 근원이 무엇일지 저는 아직 알 수 없죠. 악령이나 악마일 수 있고, 원혼이나 귀신일 수 있고, 살인마거나 복수에 미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사용할지, 불교적 세계관을 사용할지, 한국 토속 신앙의 세계관을 사용할지 여러분의 선택이 되겠죠. 다만 어떤 소재를 사용하든 그것에 대한 깊이 있는 자료조사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치 <사바하>의 장재현 감독이나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요.
안전가옥 라이브러리에는 이러한 자료 조사에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이 조금 있습니다. 안전가옥의 작품 개발 프로세스를 통해 개발하고 있는 조예은 작가의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도 안전가옥 라이브러리의 몇몇 책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하루쯤 안전가옥에 방문하셔서 라이브러리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실 거예요.
안전'가옥'에서 '가옥 공포' 쓰세요
자, 이제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여러분들의 작품(트리트먼트)를 기다릴게요. 미세먼지로 가득한 봄날, 부디 건강하고 안전한 창작 활동 이어가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글. Shin(김신) "영업을 조금 하자면, 제가 안전가옥에 연재하고 있는 [신스텔러] 시리즈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마음이… (감사합니다)."
편집. Clare(최다솜) "저도 조그만 영업을 해 봅니다, 안전가옥 라이브러리에 공모전 준비를 위한 큐레이션 서가도 마련해뒀답니다.. 놀러 오세요.. 소곤소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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