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까지는 주로 하우스 호러 장르의 영화나 게임을 소개했습니다. 셜리 잭슨과 스티븐 킹의 소설을 간단히 언급하기도 했고요. 오늘은 호러 소설의 불모지라 불리는 한국의 호러 소설을 몇 편 소개하려고 합니다. 호러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유독 한국 작가의 호러 작품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소설도 없고, 실제로 호러 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들도 많지 않죠.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호러 소설의 대가라 부를 만한 작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스티븐 킹', 일본의 ‘기시 유스케' 같은 작가들이 그렇죠. 그들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많이 읽혔고, 한국에서도 사랑을 받았습니다. 영상화되어 좋은 성과를 거둔 작품들도 있죠. 저는 이게 참 부럽거든요. 그래서 이번 공모전의 주제를 ‘하우스 호러'로 잡았는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호러 소설을 집필하는 한국 작가들이 있습니다. 호러 소설만을 모아 책으로 내는 출판사도 있고, 아예 호러 전문 레이블을 설립한 작가들도 있죠. 그래서 오늘은 호러 소설의 불모지인 한국 문학계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책들과, 거기에 실린 하우스 호러 소설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전건우, <고시원 기담>
한 평짜리 작은 공간, 그곳에도 삶이 있다. 쇠락한 고시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기묘하고도 환상적인 이야기
변두리 시장통에 자리한 고문고시원. 1990년대 불어닥친 고시원 열풍에 편승해 지어진 고문고시원의 원래 이름은 ‘공문고시원’이었다. ‘공부의 문’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었으나, 어느 날인가 ‘공’자 밑의 이응이 떨어져 나가 ‘고문고시원’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고시원 원장의 저가 전략에 힘입어 다양한 사람들이 고문고시원에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시설이 낙후되면서 곧 하나 둘 떠나게 되고, 원장이 고시원을 허물겠다고 발표한 이후에는 대부분이 방을 비워 지금은 단 여덟 명만이 고문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다. 고문고시원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살아간다.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된 그들은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 한 평짜리 삶을 이어가고 있다. 『고시원 기담』은 유령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기묘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옴니버스 구성으로 전개되는 이들 각각의 이야기는 추리, SF, 무협, 스릴러 등 서로 다른 장르를 통해 저마다의 색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들의 기묘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마지막에 하나의 사건과 이야기로 합쳐지고, 거대한 음모와 맞닥뜨리게 되면서 기적 같은 순간으로 이어진다.
출처: CABINET
한국의 하우스 호러 소설, 하면 가장 처음 떠오르는 작품이 전건우 작가의 <고시원 기담>이었습니다. 낡은 고시원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겪는 기이한 사건들을 군상극 형식으로 구성한 소설입니다. 인물들에게는 고시원이 집이고, 그 공간에서 사건들이 벌어지니까 하우스 호러 장르에 정확히 부합한다고 볼 수 있겠죠. 한국 작가의 호러 장편 소설은 정말 드물고, 심지어 하우스 호러 장르의 특징을 고스란히 갖고 있으니 공모전에 응모하신다면 한 번쯤은 꼭 읽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들 아시죠? 화제의 그 책
전건우 작가는 <고시원 기담> 뿐 아니라, 안전가옥에서 만든 책 <냉면>에 초대작 <목련면옥>을 수록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목련면옥> 역시 하우스 호러 장르의 단편소설이에요. <냉면>에 실린 유일한 호러 단편이기도 하죠. 숙식이 제공되는 냉면집 ‘목련면옥'에서 일하게 된 주인공이, 밤마다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에 이끌려 무시무시한 육수 맛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에게는 냉면집이 숙식을 해결하는 공간이고, 그곳에서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니 <목련면옥> 역시 하우스 호러 장르라고 볼 수 있겠죠. 안전가옥에서 만든 책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잘 만든 하우스 호러 단편 소설이니 꼭 챙겨 보시길 권합니다.
황금가지,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시리즈
민음사의 장르 픽션 레이블이자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를 운영하는 황금가지에서는 국내 작가들의 호러 단편 소설을 모은 단편집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시리즈를 7권째 내놓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한국 문학 시장에서 호러 문학이 처한 현실을 감안했을 때 아주 소중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죠. 시리즈 하나 당 10편 내외의 호러 단편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으니, 국내 작가들의 호러 소설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시리즈만 다 읽으셔도 70편 내외의 작품을 확인하는 셈입니다. 호러 팬으로서 정말 소중한 책들이에요.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작품은 2017년에 출간된 <단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에 실린 장은호 작가의 <천장세>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원룸에 월세 사는 사람이 화장실을 월월세로 놓을 수 있고, 화장실에 월월세 사는 사람이 천장을 월월월세(?) 놓을 수 있는 도시입니다. 좁은 원룸에 월세로 살고 있는 주인공이 신혼부부에게 화장실을 월월세로 주고, 신혼부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천장을 월월월세로 내어 줍니다. 원룸, 화장실, 천장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밤마다 주인공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하우스 호러에 딱 들어맞는 설정입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에서, 가장 위험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죠. 이 도시에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끔찍한 방법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위험한 사건을 유발합니다. 한국 사회의 부동산 문제와 도시 빈민들의 모습을 솜씨 좋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괴이학회, <괴이, 서울>
김선민 작가를 구심점으로 7명의 작가들이 모여 2018년 출범한 호러 소설 레이블 ‘괴이학회’의 첫 프로젝트인 <괴이, 서울>입니다. 대도시 서울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들을 모아 출간한 단편집이에요. 문준수 작가의 삽화가 책 곳곳에 삽입되어 더욱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책이죠.
<괴이, 서울>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는 엄성용 작가의 <동거인>이 가장 하우스 호러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고시원에 살던 주인공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해 싸고 넓은 방으로 이사를 하고, 그 방에서는 밤마다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지만 보증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계약 기간을 지켜야 하죠. 짧은 소설이라 더 언급하다가는 결말을 이야기하게 될 것 같아요. 직접 읽어보세요.
괴이학회는 지금 두 번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요, 그 프로젝트의 주제는 <하우스 호러>라고 해요. 이 프로젝트에는 <괴이, 서울>보다 두 배 정도 많은 작가들이 참여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프로젝트가 제대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열 편이 넘는 하우스 호러 단편 소설들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정말 기대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글. Shin(김신)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에도 ‘스티븐 킹'이나 ‘기시 유스케' 같이 널리 사랑받는 호러 작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작가님들 부디 힘내세요!"
편집. Clare(최다솜) "힘내세요! 대낮에 신나는 노래 틀어놓고 읽겠습니다!! (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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