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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단위 : 햄릿은 몇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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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셰익스피어
오늘 조금 위험한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야기에 ‘단위'를 매기는 것이지요.
저는 이야기가 살아있는 유기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서 더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한 눈에 이해하기 어렵지요. 이해하기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고양이를 생각해 보세요.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스럽잖아요?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기만 해서는 이야기가 가진 힘을 제대로 다루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눈물을 머금고 칼을 빼들어 보죠.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이 그 대상입니다. 이야기의 단위란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햄릿은 몇 개의 단위로 이루어진 이야기일까요?

이야기 하나의 단위 : 주인공 - 욕망 - 행동

저는 이야기의 최소 단위를 [주인공 - 욕망 - 행동]의 한 세트로 봅니다. 주인공이 있고, 그 주인공은 무언가를 간절히 욕망하고, 그 욕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지요. 여기까지 완료되면, 하나의 이야기가 ‘출발'한 것으로 봅니다. 일단 출발한 이야기는 다시 되돌아올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이야기할 <햄릿>의 주인공 햄릿처럼요.​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주인공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입니다. 햄릿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체구도 좋고, 건강하고, 싸움도 잘하던 아버지가 풀밭에서 자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고 합니다. 인생무상이죠. 그리고 자신이 왕이 되어야 하는데 아버지의 남동생인 삼촌이 왕이 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는 삼촌과 재혼합니다. 도대체 이게 뭐죠? 생판 남인 제가 봐도 뭐같은데, 당사자는 어땠을까요. 햄릿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자, 여기가 <햄릿> 1막 3장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최소 단위 [주인공 - 욕망 - 행동] 중 무엇이 나왔을까요? [주인공]이 나왔습니다. 주인공은 햄릿이고, 햄릿은 아직 아무 욕망도 갖지 못했습니다. 행동도 하지 않고 있죠. 그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뿐.
이어지는 1막 4장에서 햄릿은 망루로 갑니다.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죠.

“요즘 밤마다 엘시노어 성 바깥에 선왕의 모습을 한 유령이 출몰한다. 그 유령은 아무 행동도 말도 하지 않고 성 주변을 배회하다 사라진다.”

햄릿의 친구(?)들은 이 소식을 햄릿에게 알립니다. 유령이 선왕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만큼, 햄릿 왕자를 만나면 무슨 말이라도 할 것 같기 때문이죠. 햄릿은 제대로 낚여서(?) 망루로 나갑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을 한 유령을 만나죠. 그리고 유령은, 햄릿에게 1:1 면담을 신청합니다. (손짓으로 커몬커몬)
이야기는 1막 5장으로 이어집니다.
지금껏 한마디도 안했던 유령은 햄릿과의 독대의 시간이 찾아오자 어마무시한 투머치토커로 변신합니다. 자기 죽음에 대한 비밀을 구구절절 털어놓지요.

(한줄요약) “내 동생(니 삼촌)이 나를 죽였다.”

독대에서 돌아온 햄릿은 고통스러워합니다. 지금까지는 단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복수심에 불타게 되는 것이지요. 햄릿은 말로써 복수를 다짐하지만, 그의 행동은 그렇지 못합니다. 여기서부터 햄릿은 정말 재미있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요, 그의 첫 번째 행동은 이것이었습니다.

(망루에 함께 있던 자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라"

함구령을 내립니다. 부탁이라고 하지만 맹세까지 시키는 것을 보면 단순한 부탁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1막이 끝나고, 2막부터 햄릿은 미친 척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 여기까지의 이야기에서 이야기의 최소 단위가 완성되었는지 확인해 봅시다. [주인공 - 욕망 - 행동] 중 무엇이 드러났나요? [주인공]은 아까 나왔고, [행동] 역시 드러납니다. 함구령을 내리고, 미친 척을 하기 시작하죠. 그렇다면 [욕망]은 어떤가요? 드러났나요? 그렇다면 햄릿의 [욕망]은 뭐죠?​
만약 햄릿의 [욕망]이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라면, 조금 이상합니다. 왜 당장 칼을 꺼내들고 삼촌에게 달려가지 않을까요? 복수를 욕망하는 사람이 주변에 함구령을 내리고 미친 척을 시작한다니, 이상하지 않나요? 심지어 기분이 좋은 상태도 아니었잖아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2막 2장에 나오는 햄릿의 독백에서 드러납니다. 햄릿은 유령의 말을 100%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령의 말은 그저 말일 뿐이죠. 확실한 증거를 잡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내가 봤던 그 혼령, 악령일지도 모른다. 내가 약해지고 우울해진 틈을 노려 나를 파멸시려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지. 좀 더 분명한 증거를 찾아야 한다. 그래 연극이다. 연극을 해서, 왕의 양심을 움켜쥐는 거다.”

햄릿은 놀랍도록 침착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아버지를 쏙 빼닮은 그 유령이 악령이며, 자신을 파멸시키려 나타났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만큼 말이죠. 그래서 햄릿에게는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악령인지 모를 유령의 증언 뿐 아니라,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할 증거 말이죠. 그래서 준비한 것이 연극이었습니다. ‘곤자고의 살인'이라는 연극을 살짝 각색해서 유령의 증언과 유사한 연극으로 만들고, 그 연극을 왕(삼촌)과 왕비(엄마) 앞에서 보여주는 것이죠. 그 때 왕과 왕비의 반응을 증거로 삼을 생각입니다.
자 이제, [주인공 - 욕망 - 행동]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이야기의 최소 단위 한 세트가 완성된 것이죠.
햄릿은 (주인공) 유령의 말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욕망) 함구령을 내리고 (행동1) 미친 척을 하고 (행동2) 연극을 준비한다 (행동3)

전반전 : 이야기 한 세트로 이루어진 매우 치밀한 탐색전

햄릿이 왕(삼촌)에게 연극을 보여주고, 왕이 그 연극에 반응하기까지를 저는 <햄릿>의 ‘전반전'이라 부릅니다.
<햄릿>의 전반전은 ‘탐색전'에 가깝습니다. 햄릿은 자신에 대한 위협 수준(=어그로)을 낮추기 위해 미친 척을 하고, 유령의 증언을 뒷받침을 증거를 찾아 움직이죠. 왕(삼촌)은 햄릿의 미친 모습을 보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솔직히 왕에게 있어 햄릿의 존재는 부담스럽죠. 정당한 후계자이니까요. 확 죽여버리자니 왕비인 거트루트가 어떻게 나올지 무섭고, 혹여나 일어날 반란이 두렵습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선왕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아들마저 죽는다면, 동네 꼬마들까지 (현)왕을 의심하겠죠.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는 TT(feat. 트와이스)스러운 상황 가운데, 햄릿이 미친 것처럼 보입니다. 그야말로 개이득, 클로디어스로서는 환영할 만한 상황이죠. 미친 이유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오필리어 때문이든 엄마 때문이든 아빠 때문이든, 그렇게 미쳐서 광인으로 살아준다면 땡큐죠.
그리고 햄릿은, 그 지점을 파고듭니다. 실제로 미친 것이 아니라 미친 ‘척' 하는 것이었고, 자신에 대한 위협 수준을 낮춘 채 증거를 찾을 수 있죠. 전반전 치밀한 탐색전의 승자는 햄릿입니다. 연극을 본 클로디어스는 깜짝 놀라 연극을 중단시킵니다.

“불을 밝혀라! 침실로 가야겠다.”

네 그렇습니다. 햄릿이 한 골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한 단위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른 이야기가 출발할 준비를 하는 것이죠.
사담이지만, 저는 거트루트의 선택이 <햄릿> 전체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클로디어스의 욕망(=형을 죽이고 왕이 되고 싶다)을 멈출 수 없다면, 자기 아들이라도 보호해야 했던 것이죠. 클로디어스로서도 거트루트를 왕비로 맞이하는 것이 (개)이득입니다. 선왕파(?)의 반란을 잠재우고, 적통인 햄릿까지 컨트롤 할 수 있는 제안이었겠죠. 그야말로 윈윈이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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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전 : 새로운 이야기의 출발

햄릿은 전반전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유령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죠. 이야기 하나의 단위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햄릿>은 후반전에 접어들고, 새로운 이야기가 출발합니다. [주인공 - 욕망 - 행동]을 기억하세요.
후반전의 주인공은 여전히 햄릿입니다. 그러나 욕망이 변화했습니다. 전반전까지는 ‘아버지 살해의 결정적 증거'를 찾는 것이었다면, 후반전에는 더 명확해집니다. 증거를 찾았고, 왕(삼촌)이 죄인임을 확실히 알았으니, 이제 죄값을 치르게 해야겠죠. 후반전 햄릿의 욕망은 ‘복수'입니다. 삼촌을 죽여서 복수를 완성하고자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죠.
동시에 왕(삼촌)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햄릿이 자기의 비밀(선왕 살해)을 알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으니까요. 이제 왕비고 반란이고 뭐고 자기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왕은 적극적으로 햄릿을 제거할 계획을 세웁니다. 영국(=셰익스피어의 나라)으로 추방하는 척 하면서 암살을 기도하고, 오필리어 죽음에 분노한 레어티스를 이용하고, 그것도 모자라 독잔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계획은 결말에 이르러 대참사를 불러오게 되지요.
후반전은 ‘햄릿 vs 클로디어스’의 적극적 대결 구도를 취하게 됩니다. 햄릿의 욕망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출발했고, 전반전과는 완연히 다른 피바람이 불어오지요. 두 번째 이야기가 끝나면서 <햄릿> 역시 결말을 맞습니다. 흩어져 있던 모든 떡밥이 회수되고, 그 과정에서 모두 죽습니다. 역시 비극!

햄릿은 두 단위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자, 이글의 제목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햄릿은 몇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아시다시피 정답은 두 개입니다. 전반전에서 한 세트, 후반전에서 한 세트지요. 두 이야기의 주인공은 같지만, 욕망이 다릅니다. 저는 주인공이 바뀌거나, 욕망이 바뀌면 분리된 이야기로 봅니다. 행동이 바뀌는 것은 조금 애매합니다.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뭐지 이 기시감은)

더 복잡하고, 더 정교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1601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햄릿>,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햄릿> 이후 500년 동안 이야기는 더욱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게 진화해 왔습니다. 2000년 전의 이야기가 <구약성서> 수준이었다면, 1600년의 이야기는 <햄릿> 수준, 그리고 2000년대의 이야기는 HBO의 <왕좌의 게임>으로 잘 알려진 조지 R.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 수준으로까지 진화했습니다. 인류 문명이 멸망하지 않는 이상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복잡하고 정교하게 진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단위'를 이해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 욕망 - 행동]으로 이루어진 최소 단위 하나만으로 끝나는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햄릿>처럼 두 단위로 구성된 이야기들도 있지요. 그러나 <얼음과 불의 노래>는 그보다 훨씬 많은 단위들로 조직되었습니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역시 마찬가지이고, 주인공급 인물들이 떼로 나오는 하이스트 무비(도둑들, 오션스 시리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에 단위를 매기지 않고서는 도저히 만들어내기 어려운 구성이지요. 물론 위에 언급한 작품들이 모두 저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건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죠. (전 아직 안물어봤습니다)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의지할 수 있는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설계도에는 이야기의 최소 단위들이 촘촘하게 엮여져 있어야 합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같은 군상극, <어벤저스>같은 유니버스물, <오션스 일레븐>같은 하이스트 무비는 절대 ‘영감'만으로 쓸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냥 그들을 ‘천재'라 부르며 칭송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으나, 더 멋진 이야기에 도전하는 우리로서는 스스로의 ‘파훼법’을 찾는 것도 좋겠지요.
오늘 나눈 ‘이야기의 최소 단위'가 그 파훼법을 만드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감'보다 ‘작전'을 신뢰하는 창작자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이야기의 신은 늘 변덕쟁이니까요.
다음 이야기
참고자료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로버트 맥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David Ball, <Backwards and Forwards>
Shin이 소개하는 좋은 이야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조지 R.R 마틴, <얼음과 불의 노래> & HBO <왕좌의 게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
글. Shin(김신) "미친 척을 통해 어그로를 낮추던 사람이 옛 조선에도 있었으니, 여러분도 잘 아시는 흥선대원군입니다. <햄릿>이 쓰여진 때가 1601년(추정), 흥선대원군은 1820년에 태어났으니 혹시…?"
편집. May(김미루) "흥선대원군이 미친 '상갓집 개' 이미지를 널리 알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김동인의 장편소설 <운현궁의 봄>이 조선일보에 연재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소설이 1930년대에 연재됐다고 하니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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