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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 : 오리엔테이션은 왜 오리엔테이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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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테이션,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줄여서 오티, 라고 부르기도 하죠.
오리엔테이션; orientation 명사 신입 사원이나 신입생 등 새로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환경 적응을 위한 교육. '안내', '안내 교육', '예비 교육'으로 순화. 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는 학교나 학업 과정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가 주어진다.
영단어 중 뒤에 -tation 이런 녀석이 붙을 때는 보통 기본형 단어가 있기 마련입니다. 오리엔테이션의 기본형 단어는 Orient. 오리엔트. 자주 들어본 말입니다. 오리엔탈,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 소스,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
오리엔트는 ‘동쪽, 동양' 이런 뜻으로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걸 동사로 쓸 경우 ‘~을 지향하게 하다, ~에 맞추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네요. 나아가 ‘orient yourself’ 이런 식으로 쓰면 ‘자기 위치를 알다, 적응하다' 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답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입니다. ~을 지향하거나 맞추거나 자기 위치를 아는 것과 동쪽(east)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그냥 단순한 동음이의어일까요?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하나님(유일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했던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동네 한 가운데에 멋진 교회를 짓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멋진 교회를 지을 땅은 정해졌는데, 어떻게 지어야 할 지 막막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을 고민하게 만든 것은, ‘교회의 방향을 어떻게 둘 것인가?’하는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교회의 출입구가 자기 집이나 가게 근처에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야 교회에 조금 더 편하게 갈 수 있으니까, 그래야 자기 가게 주변에 유동인구가 많을 테니까요.
모두가 교회의 방향을 놓고 싸우고 있을 때,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신앙심이 깊다는 노인이 나서서 말합니다.
“우리 성경대로 합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빛 가운데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우리가 예수님을 등지고 기도하면 되겠습니까? 빛이 떠오르는 방향,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인 동쪽을 향해 고개를 숙일 수 있도록 합시다.”
사람들은 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서 제단을 동쪽으로, 출입구를 서쪽으로 향하게 지었지요. 이것이 고대 교회 건축의 한 전통이 되었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의 어원은 여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를 지을 때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동쪽을 확인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도교 교회의 평면도. 좌측이 정문, 우측이 제단이 있는 동쪽이다.
위의 짧은 이야기는 -죄송하지만- 제가 방금 지어낸 것입니다. 옛날 옛날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그 동네가 어느 동네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노인이 저런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알 바 아니죠. 다만 고대 교회 건축의 전통에 대한 내용과, 오리엔테이션의 어원에 대한 내용은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리엔테이션의 어원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영어 책부터 펼쳤다면, 혹은 고대 건축의 기본 양식에 대한 책을 펼쳤다면 어땠을까요? 저라면 아마 코린트 양식 이오니아 양식 같은 단어들 앞에서 잠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알파벳 ‘O’로 시작하는 영단어 42개쯤 외우다가 책을 던졌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출처조차 불분명한, 심지어 제가 방금 지어낸 옛날 옛적 어느 동네와 어느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은 아마 쉽게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오리엔테이션이 왜 오리엔테이션인지를 말이죠.
이야기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는 그가 가진 능력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는데에 자주 이용되어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야기가 그것을 하는 데에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따스하게 만들고자 하는 희망의 메세지일수도, 솔로들의 가슴을 찢어놓는 뜨거운 사랑의 증언일수도, 온 세상을 우울에 빠뜨려 비탄과 절망으로 끌고 가려는 악마의 속삭임일수도, 절대자의 명령을 세상에 전파하는 헤르메스의 목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The creation of Eve who emerges from behind Adam / Giulio Bonasone, Michelangelo Buonarroti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그리스도교의 창조 설화(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남자인 아담을 만들었고, 그 아담이 외로워하자 이브를 만들었습니다. 흙으로 빚어 자신의 숨을 불어넣은 아담과 달리, 이브는 그냥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빼서 만들었습니다.
저는 고대의 그리스도교가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메세지 말입니다. 천천히 뜯어 볼까요?
하나님이 여성을 만든 이유는, 남성이 외로워해서이다.여성은 남성의 신체 일부, 갈빗대로부터 만들어졌다.
이 이야기의 힘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그리스도교 문화권의 인류는 별다른 이유 없이도 남성을 여성보다 우월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문화권이 아닌 곳에서도 이런 현상은 흔합니다 = 한국의 가부장제)
기독교 창조 설화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만든 낙원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결국 쫒겨나고 맙니다. 하나님이 죽어도(?)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낙원에서 내쫒고, 그 벌로 고된 노동과 출산의 고통을 선사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하나님은 졸라 쎄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대로 할 수 있다.하나님 말을 잘 들으면 잘해준다. 말을 안들으면 가차없다.인간이 출산의 고통을 겪고, 죽도록 일해야 하는 이유는, 너희의 조상(=인간)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간의 후손들인 너희는, 태어날때부터 죄인이다.
The Fall of Man from Sistine Chapel ceiling / Michelangelo Buonarroti / www.michelangelo.org
청동기 시대를 살던 유대 민족을 상상해 봅시다. 다섯살배기 이스라엘 꼬마 아이가, 동생을 낳느라 커다란 고통을 겪은 엄마에게,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일하는 아빠에게 묻습니다.
“엄마 엄마, 동생을 낳는데 왜 그렇게 아파?”
“아빠 아빠, 왜 하루종일 그렇게 힘들게 일해야 해?”
엄마와 아빠는 대답으로 위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게임 끝입니다. 이야기는 부족을, 사회를, 종교를 유지하는 커다란 힘의 한 축이었습니다. 구약성서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책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도 마찬가지죠. 한반도의 단군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1. 고조선은 하늘의 후손이 세운 나라이다. 2. 호랑이보다 곰이 우월하다.)
이야기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문화는 인류 역사의 절반 이상을 지배했고, 셀 수 없이 많은 건축물, 그림, 조각, 음악, 시 등의 예술을 탄생시켰습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소수였던 시절, 낭독가들은 광장에서 이야기를 읊었습니다. 교회는 예술가를 고용해서 건물 외벽에 이야기를 조각하고, 천장에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인쇄술이 발달하고 인류 대부분이 글을 읽게 되었을 때에는 책의 형태로, 21세기인 현재에는 온라인 스트리밍의 형태로, 이야기는 자신이 타고 다닐 매체의 형태를 바꿔 가며 인류 곁에 존재했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이 왜 오리엔테이션인가를 기억하는 데에도, 나치 독일이 수십만의 유대인을 학살할 때에도, 일본이 소년병들을 비행기에 태워 날려 보낼 때에도, 방탄소년단이 빌보드를 점령(?)할 때에도, 그 모든 자리에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2주에 한번씩 연재할 제 글은, 이렇듯 거대한 힘을 가진 이야기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다루는 기술을 습득한다면, 어쩌면 슈퍼 히어로가 될 수도 있겠죠. 우리가 만든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고도 하죠. 그래서 이야기를 다루는 윤리에 대해서도 나누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다루는 기술과 윤리라니, 예민한 주제들에 대해서 자주 언급할 운명이겠네요.
제우스의 말을 전달하던 헤르메스는, 혹여나 아버지의 말이 왜곡되어 전달될까 제일 두려워했다고 해요. 제가 헤르메스라면, 저의 제우스는 ‘진심'이겠죠. 부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여기는 모든 이야기들의 안식처, 안전가옥이니까요.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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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Shin(김신) "그러나 의사는 제 병을 고치지 못하고, 가마꾼은 가마를 타지 못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편집. May(김미루) "토마토를 갈면 맛있는 토마토주스가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신을 갈아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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