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9일부로 일을 그만뒀다. 월간 안전가옥에서도 자주 언급했던 헬스장 인포메이션 일. 일하던 헬스장이 폐업하면서 만나게된 세번째 헬스장에서는 다행히 자의로 퇴사하게 됐다. 마음 같아서는 깔끔하게 12월까지만 일하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으나 1월에 받는 설 보너스 십만원과 일 수가 적은 2월 한 달 월급이 아쉬워 지지부진 2월까지 오게됐다.
스무살부터 시작된 알바인생, 나름대로 다양한 일을 해본 편이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랑 빙수도 팔아봤고 초밥을 나를때도 있지만 짬뽕과 탕수육을 나르는 날도 있었다. 종합병원 현관에서 환자 보호자들의 예민함을 받아내던 날도 있었지만 쇼핑몰에서 손님들한테 사은품과 즐거움을 나눠주던 날도 있었다. 물론 요즘같은 때에 알바 많이 안해본 사람도 별로 없을거다. 학교도 안다니고 딱히 배운 기술이 있는것도 아니라 지난 나의 시간을 변명한다면, 한 마디로 여러 알바를 전전했다고 말하는 수 밖에.
어쨌거나 여러 알바를 거쳐 도착한 곳이 헬스장이었다. 병원에서 나와 새로운 일자리를 찾던 도중, 무려 2시반에 퇴근하는 일이 있었다. 병원이 네시 퇴근이었는데 무려 두시반이라니. 다만 출근 시간이 6시였다. 마감하는 알바를 한 두번 해본 이후로 나는 항상 일찍 일하고 일찍 끝나는 일을 찾아다녔다. 성격상 마감하는 일을 하면 늦게까지 자다가 어기적어기적 일어나서 게으르게 하루를 보낼게 뻔했다. 그래도 그렇지 여섯시는.. 사실 알바몬에서 구인공고를 보고 한달 정도 고민했다. 내가 과연 일어날 수 있을지. 일어나는건 그렇다치고 과연 내가 일찍 잘 수 있을지.
돈이 궁하면 어떻게든 하게 되어있다. 여유자금이 떨어지는 한 달 뒤에도 이 일이 있으면 하자, 라고 마음 먹었는데 딱 한 달 뒤에도 그 일이 있었다. 시급으로 계산해서 돈을 주는 알바는 대개 일하는 시간이 짧아 안 쉬고 일을 해도 월급이 백만원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다. 일찍 일어나도 월급다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헬스장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헬스장, 사실 대표적인 꿀알바 중 하나다. 일찍 일어나서 오픈하는 일과 기타 잡일을 제외하면 굵직한 업무는 회원관리와 상담이 전부다. 쉴틈없이 자잘한 업무가 들어오는 다른 알바에 비해 가만히 앉아있을 때가 더 많아서 시간을 많이 활용할 수 있다. 게다가 헬스장 이용은 덤, 근무 시간 외에는 언제든지 이용해도 되고 운이 좋으면 친한 트레이너 쌤이 운동을 봐주는 경우도 있다.
헬스장 일이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이렇게 오래 일할 줄은 몰랐다. 일해본 알바 가짓수는 많아도 오래해봐야 1년을 넘기는 경우는 없었는데 이번 헬스장에서는 거의 2년 가까이 있었다. 알바는 어디까지나 돈을 위한 수단이라 크게 애정을 가져본적이 없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한다고 해도 내가 생각한 조건에 어긋나면 가차없이 관둘 수 있는게 알바의 정의였다.
한시에 잠들어 다섯시에 일어나는 생활이 3년째 누적이 되니 일상에 지장이 가기 시작했다. 주말에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는 것으로도 충족이 안됐다. 항상 졸려서 집중력도 낮아지고 평생 좋을 것 같던 시력도 나빠졌다. 잠 못자서 눈 나빠졌다는 얘기는 못들어보긴 했는데 잠 못자서 안구건조증이 심해지면 앞이 잘 안보이기는 매한가지다. 글 쓰는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라도 관두는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했다는 말과 다르게 마지막 당직 후 헬스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마냥 속시원하게 관둘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았다. 그 날이 회원권 만료였던 회원님이 짐을 빼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오전에 매일 오던 아저씨였는데 일이 생겨 잠깐 운동을 쉬게 되었다고,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고. 글쎄 내가 감사할만한 일을 한 적은 없었는데. 재등록할 때 회원권을 싸게해준 것도, 기간을 더 준것도 아니고 평소에 대화를 자주 나누던 분도 아니었다.
보통 회원권 끝나서 짐가져가는 사람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일은 별로 없다. 일단 대체로 짐을 안찾아가는 사람이 제일 많고 이미 운동 끝나기 전에 짐을 찾아갔다던가, 재등록 권유를 피하기위해 말없이 들어와 말없이 가져가곤 한다. 그리고 재등록 인센티브를 받는 나에게 떠나는 회원이 크게 달가울 리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저씨의 인사를 듣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나의 일상 속에만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그 사람들의 일상 속에도 내가 있었다. 그냥 일을 관두는 것 뿐인데 그 사람들의 일상에서 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기분에 괜히 간판을 한 번 더 쳐다보고 대치동을 떠났다.
그래도 2월은 이별하기에 적절한 달이다. 겨울을 떠나보내고 봄과 함께 새로운 일상을 받아드릴 때가 됐다. 비록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3월2일이 아닌 이례적인 날짜에 새학기를 시작하겠지만.. 알바인생 6년만에 평소와 다른 새로운 봄을 맞이하려고 한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최수진
“원고를 마감하면 다시 헬스장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때까지 과연 폐업을 안하고 버틸 수 있을런지 걱정되는 시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