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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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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평소 같으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적당한 단풍구경이라도 갈 생각을 했을 것 같네요. 유감스럽게도 저는 평소답지 않습니다. 본업인 직장 일은 매우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원고 수정 작업이 끝나지 않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하게도, 신종 감염병이 한 해 내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형편입니다.
가지 못한 단풍 구경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전에 갔던 좋은 풍경들을 회상하게 되곤 합니다. 단풍 보기 좋은 산사(山寺)와 기타 사찰들 이야기를 간략히 해볼까 합니다. 저는 추억을 회상할 테니 다들 일부러 찾아가지는 마시고 코로나가 잠잠해진 뒤를 위해 양보해 주시면 좋겠어요.
2.
우선 서울 시내부터 이야기할까요.
북한산 자락 위세 좋은 풍경들 속에 좋은 산사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 운동삼아 등산을 가자는 가족의 등쌀에 허약한 책벌레의 몸을 이끌고 헐떡거리며 북한산 등산로를 몇 번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종점 삼았던 곳은 엄청난 계단과 높은 불탑이 있는 사찰이었는데요. 지금 와서 기억을 더듬어 풍경과 지리를 맞춰 보니 승가사인 것 같습니다. 평창동 방면에서 올라갈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른 어릴 적에는 주말에 치기가 발동한 나머지 자전거를 타고 산을 향해 열심히 달린 적이 있었습니다. 자전거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궁금했던 저는, 마포구를 출발해 열심히 자전거를 몰고 은평구까지 넘어간 다음 구파발을 지나 지금은 은평뉴타운이 된 동네까지 올라갔었습니다. 그 안쪽으로 진관사가 있습니다. 진관사 일주문까지 올라가자 주변은 완연한 숲이었고, 좋은 공기가 흘러 넘쳤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가까지 폭주해 온 저는 반탈진했고, 경내에는 들어가지 못한 채 비틀비틀 자전거를 돌려야 했습니다.
산 속 말고 좀 더 사바세계에 가까운 곳으로는 성북동 길상사가 있습니다. 성북동 고급 주택지, 특히 외국 대사관과 대사관저가 많이 들어와 있는 동네 한복판에 호젓하게 자리잡은 이 사찰은 한때 고급 요정이었던 장소인데, 만년에 부지를 통째로 시주하여 사찰로 바뀌었습니다. 경내의 풍경이 매우 아름다워 호젓한 산책이 가능하고, 물론 철 좋을 때 숲구경 단풍구경에도 좋습니다.
3.
다음으로는 전국구로 유명한 경관사찰을 세 군데 소개하고 싶습니다.
평창 오대산 월정사 권역은 개인적으로 산사의 이데아로 꼽고 싶은 곳인데요. 탐방과 등산에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월정사는 계곡 입구 쪽에 있습니다. 여기서 차를 내려서 산 속 깊이 위치한 상원사까지 굉장히 긴 산길 산책이 가능합니다. 시간은 2시간 가까이로 오래 걸리지만 도로는 잘 닦여 있고, 주변 계곡 풍경을 만끽할 수 있어요. 원한다면 상원사까지도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고 주차장도 있습니다. 상원사를 기점으로는 본격적인 등산이 가능한데요. 탐방로로 진입할 체력이나 시간이 없다면 깔끔하고 좋은 산행체험 코스는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입니다. 30분 정도 걸리며, 가파르지만 잘 정비된 산길을 오를 수 있고, 작은 봉우리에 위치한 암자인 적멸보궁에 이르면 사방으로 트인 경치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셨다는 불교 성지를 말하는데, 국내에 다섯 곳 있다고 합니다.
양양 낙산사도 좋은 곳이죠.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절경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넓은 도량을 산책하다 보면 바다를 굽어보는 해수관음상과 바다 코앞에서 관음상을 우러러보는 암자인 해수관음전이 나타납니다. 낙산사의 아름다운 경치에는 말끔한 새 건물과 간혹 남은 불탄 나무들의 흔적이 함께하고 있는데요. 2005년 낙산사 대화재로 소실된 건물들과 수목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복원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 “Feel the rhythm of Korea” 시리즈의 강릉편에서 살짝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이날치 “약일레라” 노래에 맞추어 해수관음전, 원통보전, 종각, 해수관음상 앞에서 춤을 춥니다.
부산 기장의 해동용궁사도 추천합니다. 들어가는 길은 좁지만, 그래서 좌우의 단풍경치를 누리기 좋습니다. 짧은 고개를 넘어 들어가면 바다 바로 앞에 펼쳐진 멋진 사찰이 위치해 있습니다. 흔히 바다와 단풍을 함께 즐기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아름다운 나무들을 보면서 해풍을 맞고, 산산이 부서지는 깊은 파도와 마주할 수 있습니다. 주변 연계 관광지로 추천하고 싶은 곳은 국립수산과학관인데요. 용궁사에서 해안 산책로를 따라 도보로 방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기도 관광공사 홍보영상에 나왔네요. 그리고 위 낙산사 영상과 용궁사 영상에는 모두 흥겹게 춤추는 스님이 까메오로 나오십니다.
그 외에 끝내주는 경치의 산사를 몇 군데 알고 있지만 개인적 인연으로 아는 곳들이므로 제가 비밀로 잘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4.
여기까지 빌드업이었습니다.
사실 진짜 소개하고 싶었던 산사가 한 군데 있는데요. 위의 모든 곳은 제가 한 번씩은 가 본 적이 있는데, 여기는 가본 적도 없으면서, 원격으로 한 번 보기만 했는데 어라라라?? 했던 곳이거든요. 경위를 말하자면 조금 깁니다.
며칠 전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철도 유튜브 채널이 올려놓은 중앙선 주행영상을 보고 있었어요. 이 구간은 올 연말 폐선되고, 가까운 곳에 새로 지어진 중앙선 복선 신선으로 운행 구간이 바뀌게 됩니다. 여러 역이 폐역될 예정이고, 추후 강원도 측에 의해 철도관광시설로 재개발 될 예정입니다. 그 구간 중 치악역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바로 뒤편에 치악산 대성암이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대성암 사찰의 앞마당에 철도가 들어와 있습니다. 치악역에서 분기되어 딱 사찰 앞마당까지만 들어가는, 마치 사찰 전용 철도처럼 생각되는 짧은 선로가 말이죠! 딱히 완진히 폐선로도 아닌 것이, 이 선로 하나만을 위해서 자동 선로 분기기가 설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치악역 자체는 무인역으로 여객 취급도 제대로 하지 않는 역입니다. 하지만, 신경쓰이잖아요. 제대로 된 운행구간도 아닌데 돌연히 분기되어 사찰 앞에서 뚝 끊겨버린 철도라니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너무 좋은 소재 아닌가요? 사실은 그렇게 보이는 풍경은 위장된 것이고, 어느 날 특별한 열차가 중앙선을 경유해 사찰 앞마당으로 진입하면 그 곳에서 무릉도원이나 기타 신비한 세계로 선로가 쭉 이어지는 겁니다! 사찰에는 그 신비한 세계를 관리하기 위한 분들이 기거하고 계시고요!
...상상력의 주책에 대해 대성암 승려 및 신도 여러분께 사죄 말씀 올립니다. 현실적으로 따져 보면, 이 분기 선로는 복선 구간의 역주행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어 실수로라도 열차가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실질적으로는 폐선로이며, 검색하면 부처님 오신날에 선로 위로 차려진 봉축연등의 풍경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선로가 왜 존재하고 자동 분기기까지 설치되어 있을까요? 검색되는 치악역 사진들 일부에서는 이 선로에 선로 보수용 차량이 정차해 있는 모습이 확인됩니다. 즉, 소형 정비차량이나 비상용 기관차의 일시적 정차를 위한 예비선로로 활용 중인 모양입니다. 그래도 왜 이런 곳에 이런 방향으로? 치악역에서 국내 최초의 또아리굴인 금대2터널로 가는 길에는 비교적 새로 지어진 복선 교량이 있습니다. 원래의 선로는 대성암 앞으로 해서 산비탈을 따라가는 급곡선이었는데, 70년대에 중앙선 전철화 공사를 할 적에 선형개량을 위해서 복선 철교를 짓고 구 선로를 없에버린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중 짧은 구간을 남겨놓고, 치악역의 구내 선로로 간주해 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디까지나 상상과 추측의 영역입니다. 철도 매니아로서의 상상도 흥미롭지만, 솔직히 작가로서는 역시 조금 전의 발칙한 상상 쪽이 더 즐거웠습니다. 치악산 호그와트 익스프레스라니 멋지지 않습니까? 아쉽게도 조만간 폐선 예정이지만 말이죠...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시아란
"결국 철덕의 흥분과 해괴한 상상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냐고 물으시면, 정말 달리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