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십 몇 년 전, 이십대 후반이던 나와 내 친구는 장르소설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소설가의 자세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고는 했다. 소설가로 갓 데뷔한 우리 둘은 넘치는 의욕을 주체 못해 우리나라 장르소설 전체를 짊어진 것처럼 대책없이 떠들어댔다.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웃긴 노릇이지만 그 당시에는 꽤 진지했다. 바야흐로 각종 장르소설 앤솔로지가 출간되면서 이 바닥이 활기를 띠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그때 장르소설을 쓰던 대부분의 작가들은.
어렸을 때라 그랬는지 그 당시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마구 떠올랐다. 참신한 반전과 기막힌 구성, 그리고 빠른 속도까지 우리는 거칠 줄을 몰랐다. 한달에도 단편을 몇 개씩 썼다. 우리 둘은 만나기만 하면 소설 이야기를 했고 금방이라도 대작을 쓸 것처럼 굴었다. 분명, 그렇게 믿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선배 작가들에게 실망 아닌 실망을 하고 있었다. 선배들은 (적어도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조심스러웠고 참신한 소재를 찾기는커녕 그저 그런 이야기에 안주하려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이 때문일지도 몰라.”
내가 속삭이자 친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창의력이 떨어진대.”
선배들은 삼십대 후반 아니면 사십대였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재미있는 소설을 쓰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나이였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우리가 책임져야겠지?”
“그렇지. 우리 전성기는 지금부터니까.”
건방지고, 치기 어리고, 어설프고, 촌스럽고, 유치했던 그때의 우리가 이제는 그 나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미 전성기가 한참 지나고도 지난 나이 말이다.
거의 2년 가까이 지독한 슬럼프와 각종 병마에 시달리면서 나는 진심으로 은퇴를 고민했다. 내가 은퇴해봐야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전업작가 생활을 접고 다시 회사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가가 소설을 쓸 수 없는 상태니 이것이야말로 직무유기고 유통기한 지난 스팸과 같은 상황이었다. 한 마디로 망한 것이었다.
“역시 나이 때문인가?”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내가 물었다. 한 가지 사실을 덧붙이자면 친구 역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지금 후배들도 우리 보고 똑같은 소리 할 거야.”
친구가 힘없이 말했다.
“역시 이제는 한참 지나버린 거지? 전성기 말이야.”
“그런 게 있기는 했냐?”
“하긴.”
어쩐지 대화를 할수록 슬퍼져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이십대 후반에 창의력이 없다며 흉을 봤던 선배들은 여전히 글을 쓰고 있었다. 지나간 세월만큼 선배들 역시 나이를 먹었는데도 예상과 달리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뒤틀린 집> 마감을 한 후 며칠 뒤, 나는 그 선배들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슬럼프가 없었느냐고.
“야! 슬럼프는 원래 디폴트로 깔고 가는 거야. 슬럼프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을 걸.”
선배는 대번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난 이제야 알게 됐어. 마지막 순간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승리자라는 사실을.”
어느 영화에서 따왔을 게 뻔한 선배의 그 한 마디는 묘하게 나를 위로했다.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거라면 자신이 있었다. 오래 달리기를 할 때도 끝까지 남는 사람이 나였으며 오래 매달리기를 해도 마지막까지 철봉을 부여잡고 있는 건 항상 나였다.
남보다 덜 빛날지는 몰라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보자. 슬럼프에 빠져도 꾸역꾸역 써보자. 사실상 <뒤틀린 집>도 3분의1 이상은 병원 침대에서 쓴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나이가 들고, 창의력의 샘물이 말라버려도 쓰러지지 않는다면, 그렇게만 되지 않는다면…….
…… 조금쯤 희망을 품어봐도 되지 않을까?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전건우
“그동안 월간안전가옥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