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School! 방학이 끝나는 3월을 맞아 운영멤버들은 "나의 학창시절 콘텐츠"에 대해 적었습니다.
라떼는(?) 이 책 안 보면 안 됐다.. 싶은 학창 시절 유행했던 콘텐츠, 예민한 사춘기 시절 나를 사로잡은 그 콘텐츠, 하지만 지금은 밝히기 싫은 그 콘텐츠! 지금의 운영멤버들을 만든 콘텐츠,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이번 주제는 나에게 있어서 역대급으로 어려운 주제인 것 같은데, 이유는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어떤 특정 콘텐츠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떠들었던 기억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친구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대유행이라고 기억하는 것 중의 하나는 아이돌 정도였달까. HOT에 빠질까 말까 할 때 즈음 친척 오빠가 놀러 와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알려줬었고, 거기에 빠졌다가 거의 모든 친구가 HOT를 좋아해서 나도 덩달아 그들을 좋아했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나는 주로 엄마와 함께 드라마를 자주 봤다. 채널 선택권을 가지기도 전에 나는 엄마가 보는 것을 따라보며 자랐다. 엄마는 내가 어리다고 해서 어른이 보는 드라마를 극구 못 보게 말리는 분도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것도 같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이해하는지를 묻는 분도 아니었고.
내가 여덟 살이던 94년도에는 공포 드라마 <M> 이 대유행이었다. 무서운 것을 볼 때 식구들과 함께 긴장감을 느끼는 것을 일종의 유희라 여겼던 것 같다. 그 분위기를 좋아했다. 무서운 것을 함께 볼 때 함께 떨고 몸서리치고 난 뒤에 삐져나오는 웃음 같은 것을.
드라마 <M> 은 엄마가 못 보게 한 회차도 있어서 모든 이야기를 다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면서 본 것이 아니라 그저 초록색 눈과 괴이한 목소리로 변하는 마리의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고, 학교에서는 이걸 따라 하는 친구들도 있었기에 그 유행을 함께 따라가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런데 다 큰 후에야 그 드라마가 낙태를 소재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생각보다 파격적인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2년 전에 방영한 드라마 <아들과 딸>은 남아선호사상이 투철한 한 집안 속 아들과 딸의 인생을 그린 드라마였는데, 당시 사회적으로 여성이 가진 이슈들을 이야깃거리로 많이 가져다 썼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와 드는 생각을 덧붙이자면 드라마 <M> 은 남아선호사상에 의한 여아 낙태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실은 낙태를 유발하게 만드는 범죄자뿐 아니라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에게도 원한을 품는 구도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낙태를 소재로 썼을 뿐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 드라마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M> 은 당시로썬 파격적인 소재를 채택하고 그보다 더 파격적인 효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어 시청률도 꽤 높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주인공 마리의 초록 눈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엔딩 장면이다.
낙태 당한 여아의 혼 때문에 기이하게도 괴력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던 마리는 경찰의 표적이 된다. 이야기의 막바지 즈음 그 혼은 마리의 키스로 마리가 사랑했던 지석에게 옮겨 간다. 그러나 마리를 사살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이 마리를 겨냥해 총을 쏘고 지석은 죽어버린 마리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자폭한다. 이 장면은 어느 화력발전소 기둥처럼 보이는 거대한 구조물에 두 사람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가 끝내 길고 긴 추락을 하는 것으로 연출되었다.
지금 보면 어설퍼 보이는 특수분장과 그래픽 효과이지만 수포가 오르고 살이 문드러지는 분장, 혼이 깃들었을 때 변조된 목소리 등 당시에는 꽤 파격적인 장면이 여럿 등장하고, 특히나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주인공이 끝내 추락하는 마지막 장면은 폐공장이라는 장소적 분위기와 만나 더 슬퍼진 엔딩 장면으로 기억한다. 마리의 억울함과 마리를 향한 지석의 사랑이 한꺼번에 몰려와 조마조마하고도 슬픈 장면이었는데, 무서운 이야기가 이토록 슬프게 끝난다는 것이 어린 시절 나에게는 새로운 이야기적 경험이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여름인 8월 30일에 끝난 마지막 회차의 시청률은 무려 50%가 넘는다.
나는 요즘에도 공포물을 거리낌 없이 본다. 공포물이 주는 원초적인 자극만큼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함께 공포 영화와 납량특집극을 함께 보는 시간이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섭고 조마조마하고 놀랍고 가슴이 뛰고 징그럽고 역겨울 때도 있지만 그 장면을 함께 소화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게다가 공포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그 장면이 뒤따라오지 않는 나의 반쪽 기억력 덕분에 나는 앞으로도 공포 영화를 즐겨 보게 될 것 같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헤이든
4월에 개봉할 <라스트 나이트 인 소호>를 기다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