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는 쓰고 있는 트리트먼트를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쳤다. 아직 한참 더 고쳐야 한다. 월간 안전가옥을 쓰려고 보니 2월엔 트리트먼트를 고친 기억뿐이라 뭘 써야 할지 사실 좀 막막했다.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어쩐지 더 막막했다(!) 월간 안전가옥을 쓴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언젠가 월간 안전가옥에서 한 번은 써보고 싶었던, 몇 개월 동안 기후 위기 관련한 글을 쓰면서 느꼈던 점을 짧게 적어보려고 한다.
요즘은 플라스틱 컵을 쓰면 죄책감을 느낀다. 일회용 비닐을 쓰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샴푸 통, 칫솔, 치약 같은 소모품을 바꿀 때가 되면 또다시 죄책감을 느낀다. 아마 많은 사람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후 위기 관련 이슈가 시급한 안건으로 떠오른 지는 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죄책감 때문에 플라스틱 컵을 텀블러로 바꾸고 샴푸는 비누로 바꾸고 플라스틱 칫솔은 대나무 칫솔로 바꿨지만, 이걸로 충분한가? 하는 질문을 던졌을 때는 아직도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뭘 더 할 수 있는가 생각하면 막막한 기분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소비자에 가깝다. 어떤 물건도 사지 않고 살아가기란 자연인이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친환경주의적인 소비를 하는 개인 역시 마찬가지로, 어차피 물건을 살 수밖에 없다면 친환경 제품을 사는 게 그나마 윤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친환경 제품을 사게 된다. 내가 텀블러를 사고, 비누를 사고, 대나무 칫솔을 사는 건 이런 맥락 아래에서 나온 행동이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이로운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가? 요즘 고민하는 것은 친환경주의를 지지하는 개인이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너무 좁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문제는 한 가지 더 있다. 자연에 어떤 것이 더 이로운지 개인이 판단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자연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회용 비닐봉지와 종이봉투가 있다고 했을 때 종이봉투 쪽이 더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종이봉투를 쓴다면 그걸 최소한 네 번 이상은 재사용해야 비닐봉지를 쓰는 것보다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마트에서 쓰는 봉투는 튼튼해야 하고, 찢어지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와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천으로 만든 에코백도 최소한 스무 번, 서른 번 이상은 사용해야 환경에 도움이 된다. 텀블러도 마찬가지다. 이런 지침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는 이상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사실 기후 위기라는 커다란 실존적 위협 앞에서 이것으로 충분한가 고민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이걸 20년, 어쩌면 10년 이내에 다가올 위협으로 인식했고, 인식한 이상 뭐라도 할 수밖에 없다. 그게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처럼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보일지라도. 이곳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가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기후 위기 관련 글들을 보면 이것으로 괜찮은가? 뭔가 더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윤이안
“그래서 고민은... 앞으로 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건데,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