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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와 마스크와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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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요.
3월 초까지만 해도, 마스크를 끼고 달리는 게 정말 죽을 맛이었거든요? 그러잖아도 숨이 턱끝까지 차는데 마스크까지 끼고 있으니 “이러다 죽겠네” 싶을 때도 있었고, “달리기 그만둬야지” 하는 날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것도 적응이 됐는지, 9월 중순 이후로는 마스크를 끼고 달려도 그냥저냥 달릴만하더라구요. 어쩌면 몸이 적응한 게 아니라 여름이 끝나고 나니 괜찮다고 느껴진 건지도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오늘 하려던 얘기는 이게 아니고...
보통 집 앞 공원에 달리러 나가는 시간이 아침과 저녁 모두 비슷한 시간으로 정해져 있거든요. 그래서 아침엔 아침에 만나는 분들이 있고, 저녁엔 저녁에 만나는 분들이 있어요.
아, 같이 달리는 크루라거나 아는 사이인 건 아니고요, 오며 가며 눈에 익은 분들이에요. 늘 같은 시간에 같은 루트를 비슷한 페이스로 달리는 분들이다 보니 마주치면 서로 아는 체를 하는 사이가 된 거예요.
달리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기도 하고요. 맞은편에서 달려오다가 서로 지나치는 순간 눈인사를 하거나 엄지를 들어 올려 아는 체하는 분도 있어요. 아침에 만나는 아주머니 한 분은 항상 “어어!” 하시고, 저는 “안녕하세요!” 하고요. 저녁에 만나는 할아버지 한 분은 저를 지나쳐 앞서 나가실 때마다 꼭 뒤돌아보고 손을 흔들고 가세요.
그런데 마스크를 끼고 달리는 게 익숙해진 최근엔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어요.
마스크를 끼고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손을 흔들어 아는 체를 하고, 눈인사를 하고, 엄지를 들어 올려 서로의 달리기를 격려하고 있더라고요.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나고 또 만나도 변함없이요. 마스크를 끼고 있어도 알아보는 거예요. 처음 마스크를 끼고 달리던 즈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어요.
이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 (범죄 소설·드라마·영화 속) 범인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고 못 알아보는 거... 좀 이상한데?”
달리는 내내 이 생각을 하다가, 달리기를 마치고 집에 갈 때쯤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된 이후의 일상을 돌이켜보니, 보통 마스크 착용 여부에 따라 상대를 알아보고 못 알아보고의 차이는 “맨 처음 만났을 때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는가?”에 따라 달라지더라고요.
마스크 없는 얼굴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마스크를 낀 상태에서도 서로를 알아보는 경우가 많았고, 반대인 경우는 마스크를 벗으면 “어머 마스크 한 얼굴만 봐서 몰랐네.” 하는 반응이었거든요.
보통, 주인공들이 범인을 마주칠 때는 마스크를 낀 얼굴을 먼저 보는 경우가 많으니까 벗으면 못알아보나보다... 하고 금세 납득하고 말았습니다.
좀 싱거운 결론이긴 한데, 저는 포기와 납득이 빠른 사람이라서요.
아무튼, 오늘도 저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저의 달리기 친구들과 수줍게 눈인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차네요. 마스크 라인을 따라 땀이 맺히던 계절이 완전히 끝났어요. 내년 이맘때쯤엔 다시 마스크를 벗고 달릴 수 있을까요? 그때가 되면 또 한 번 마스크를 낀 범인에 대해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이재인
"올봄에 신청했던 마라톤 대회는 6월, 9월, 10월 세 번의 연기를 거쳐 결국 11월의 어느날로 개최일이 정해졌어요. 올해가 가기 전에 대회가 열리긴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