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번 이야기는 좀 지저분할 수 있습니다…….
안전가옥 공모전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되든 안 되든, 원고를 내든 내지 않든, 마이너리티 히어로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써야 할 원고에 허덕여 다른 건 꿈도 못 꾸고 있지만요….
마이너리티 히어로. 투시능력으로 쓰레기봉투 속 재활용 쓰레기를 골라내는 부녀회장 히어로라는 설명을 보고 뭘 쓸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버스 안에서 간절히 바라고 있는 저를 보며 아이디어가 확 떠올랐어요.
네. 배탈을 가라앉힐 수 있는 히어로입니다!
저는 위와 장이 그렇게 건강한 편은 아닙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는 괜찮다고 해도 위는 금방 체하고, 소화도 잘 안 되고, 역류성 식도염도 있고 그렇습니다. 위는 그냥 아프고 말아요. 혼자 묵묵히 고통을 삭이다가 죽이나 약, 양배추즙 등을 먹고 커피와 밀가루와 매운 것을 멀리하면 나아집니다.
그러나 배탈은 화장실만이 해결방법입니다.
배탈은 자연재해처럼 찾아옵니다. 전날 매운 걸 먹어서 배탈이 났다면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겠으나, 별다른 걸 먹지 않았는데도 배탈이 나면 몸을 원망하게 됩니다. 배는 아프고 출근은 해야 하고. 시간이 있어 화장실에 갔다오면 다행입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배탈은 다시 찾아옵니다. 1차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이러면 배탈이 아니죠. 버스의 진동에, 건너편에서 누군가 열어둔 창문에서 흘러들어오는 찬바람에, 덜 말린 머리카락이 뒷덜미를 스칠 때에… 아랫배가 싸해지면서 온몸이 서늘해집니다. 당장이라도 내려서 화장실을 가야 하는지, 근처에 화장실은 있는지, 참을 수 있는지, 중간에 내리면 지각은 하지 않는지. 많은 생각이 오가고 저는 두 손을 마주 잡습니다.
제발, 제발, 제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자. 인터넷에 올라갈 수는 없다. 제발, 내가 뭘 먹었다고, 어제 매운 거 먹었나? 당분간 매운 거 안 먹을게요, 제발…….
대상 없는 기도를 절실하게 합니다. 배가 아팠다가 괜찮아지면 다행이다 조금만 버텨보자는 생각이 들다가 다시 아파옵니다. 아까보다 더 큰 위기에 다시 두 손을 부여잡고 더 간절하게 기도를 합니다.
신이시여, 제발…. 인터넷에서 버스에서 볼일 본 사람으로 유명해질 수는 없어, 인간의 존엄성, 제발, 어떻게 하지, 아 또 괜찮아졌다. 빨리 가자. 신호등 파란불! 제발, 가라가라! 아저씨 제발 밟아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아주 치열하게 기도하고 싸웁니다. 온 신경을 내면에 쏟아부으며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나? 내려서 화장실로 달려가는 것과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중 뭐가 더 빠를까? 하며 버스정류장을 앞둘 때마다 고민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진 적은 없습니다. 만약에 졌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만약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을 감지하고 배탈을 진정시켜주는 마이너리티 히어로가 있으면 어땠을까요? 출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기도만 하는 절박한 인간을 구할 수 있고,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고속버스를 타야 갈 수 있는 여행지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매운 음식도 걱정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겠죠.
이런 히어로가 있다면 같은 버스 타고 출퇴근하면 안 될까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김청귤
"원래 다른 거 쓰려고 했는데, 오늘도 배탈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