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가디언 멤버 OU
코로나로 인해 3주 정도 출근 및 사회 생활이 제한되었을 무렵 시간을 보내기 제일 좋은 방법은 넷플릭스에 딥다이브하는 것이었다. 물론 책을 읽는다던가, 미루고 미루던 글을 쓴다던가 하는 더 생산적인 옵션도 있었지만...쩜쩜쩜
그렇게 넷플릭스에 한참 딥 다이브하다 보니 나이를 먹으면서 나의 취향이 너무 좁아졌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오글거리는 우연들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로맨스는 대부분 패스.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그걸 부각하기 위해 지나치게 젠더 감수성 떨어지는 악역들을 많이 배치하는 것도 고통스러워서 패스. 이상할 정도로 흉악한 화질을 보이는 홀마크 채널의 드라마들 패스...등등등
그러다 보니 넷플릭스의 넘쳐나는 콘텐츠들 중에서도 정작 볼게 없는, 풍요 속의 빈곤을 완벽히 체감하며 고통 받던 중 맞춤형으로 뜬 시리즈 중에 <테일즈 오브 더 시티>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완전 폭풍 시청.
알고보니 93년부터 이어진 초장기 시리즈의 마지막 시즌이었지만, 간단히 축약하자면 트랜스젠더 여성인 안나 매드리갈이 운영하는 하숙집에 사는 사람들의 30년에 걸친 가족들과 소수자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듣기만 해도 파란만장하지 않은가.
이걸 보면서 빨려들어갔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예전에 인상 깊이 본, 그걸 넘어 내 인생의 후반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준 영화- 2005년 개봉한 <메죵 드 히미코>와 무척이나 비슷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마니악한 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해서 이토록 애착을 느끼는 건, 한국에서 ‘가족상’을 너무나 강력히 제시하고 그걸 좇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배제하며, 그 상에 부합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외로운 노년을 매몰차게 외면하는 가차없이 현실 때문이다.
착하고 성실하지만 전통적 가족상과는 살짝 핀트가 어긋난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외로운 노년은 실존적 공포이며, 그렇기 때문에 <메죵 드 히미코>와 <테일즈 오브 더 시티>를 보며 ‘누구나 환영하는 포용적 커뮤니티’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혈연’에 의존하여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한국에서, ‘혈연’이 최선의 수단이 아닌 사람들이 서로를 돕고 도우며 의지하고 살아가는 커뮤니티. 이미 여기저기 생기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게 본격적인 대형 단지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테일즈 오브 더 시티> 1편에 나온 안나 매드리걸 여사의 90세 생신 같은 파티가 1년 내내 이어지는 마을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즐거운 상상만으로도 현실을 버텨가게 되는 것 같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가디언 멤버 OU
"어려서부터 농담처럼 ‘너네 나중에 갈 곳 없는 독거노인 될테니 다 같이 살자’라고 얘기한 친구들이 이젠 너무 많아져서 어디 대규모 아파트 단지라도 개발해야 하지 않나 땅 보러 다니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