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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 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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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영화의, 그중에서도 90-00년대 주성치 출연작들의 라이트 팬으로서 새해 첫날 첫 순간 <희극지왕>의 첫 대사 ‘노력! 분투!’ 를 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정확히 서기 2021년 1월 1일 00시 00분 01초에 ‘노력! 분투!’를 들으려면 인위적으로 그 직전에 영화를 포-즈 해 두어야 하는지라 사실은 2020년 12월 31일에도 그 대사를 실컷 들었고 (‘노력! 분…’, ‘노…!’ 이런 식으로) 새해의 첫 순간에 듣는 것에만 의미부여를 하는 스스로가 좀 우습다는 생각도 했지만 아무튼… 아무튼 그렇게 했다.
그걸 인증하느라 캡처를 뜬답시고 새해 최초로 그 대사를 들은 00시 00분 01초 이후에도 영화를 몇 번 더 멈추고 대사를 다시 들었다… 일상에 의미부여를 한답시고 하는 자기연출이 좀 잡스럽고 못나게 느껴져서 누가 대신 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이런 디테일을 대체 누가 나 대신 내 맘에 쏙 들게 연출해 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제가 새해에 했던 첫번째 생각의 덩어리.
새해 첫날 첫 순간 첫 영화로 <희극지왕>을 보기로 결심한 김에 12월 31일에는 주성치 영화를 몇 편 더 봤다. 일명 서유쌍기로 불리는 <월광보합>과 <선리기연>, 주성치가 감독한 <서유항마편>(국내 개봉 제목은 <서유기: 모험의 시작>), <신희극지왕>(<신희극지왕>은 주인공이 여자 배우로 바뀌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 디테일도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담 새해 첫 영화를 이걸로 삼을까 하고 틀어봤다가 첫 장면에서 ‘노력! 분투!’ 가 나오지 않길래 앗… 하고 그냥 마저 봤다).
<선리기연>의 결말부에서 삽입곡 ‘일생소애’가 나오는 것을 들으며 2020년의 마지막 눈물을 흘렸고… 감독 주성치가 연출한 나머지 작품들을 보면서는, 비록 울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떤 맥락에서냐 하면 이 사람은 너무 빼어난 배우였던 바람에, 감독으로서는, 자신이 주연한 작품을 뛰어넘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는 점에서.
그리고 <서유항마편>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그 싸움에서 승산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져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위에 쓴 감상들을 애인에게 이야기해주었더니 “그러고 보면 (박서련이) 최근에 발표한 <거의 영원에 가까운 장국영의 전성시대>는 20세기말 한국 버전 <희극지왕>같다” 는 감상으로 답해 왔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크게 의식하고 쓴 게 아닌데 그렇다. 무엇이 되고 싶지만 아직 그 상태에 이르지 못한 사람의 간절함이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썼더니 그렇게 됐다.
이 지점에서 주성치가 주연한 <희극지왕>과 그가 감독한 <신희극지왕>이 겹쳐지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야 같은 영화 제목에 ‘신’이라는 말을 붙여 리메이크한 것이니 당연하지 않겠나, 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 많은 것이 달라서 정말 리메이크인지, 리메이크일 필요가 있었는지 처음에는 의심도 들었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신희극지왕>에는 스마트폰이 나오고 위챗 등 동시대 중화권에서 자연스럽게 쓰이는 어플리케이션들이 사용 및 언급되며 주인공 여몽은 배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원작이 ‘주성치의 <희극지왕>’이었는데 주성치가 나오지 않으니 영화의 정체성이 의심스럽지 않겠는가. (감독 주성치의 <신희극지왕>은 ‘주성치의’ <신희극지왕이 아니냐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주연일 때의 존재감과 감독일 때의 존재감이 엄연히 다르다. 다만 <신희극지왕>에서는 “<희극지왕>을 좋아하세요?”라는 대사가 나오고 “주성치 감독” 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주성치가 중화 영화계의 거장으로  실존하는 세계관이라는 것.)
배경 연대가 20세기 말에서 2010년대 말로, 주된 공간이 홍콩에서 중국으로, 주연 배우의 성별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어 버린 모든 것을 소거법으로 지우고, 남은 것을 헤아려 보면 결국 주인공의 간절함만이 남는다. 이미 중화 영화계의 거장이 되어버린 배우 겸 감독 주성치에게 여전히 그때의 간절함에 대한 감각이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아련하게 느껴졌다. <신희극지왕>이 <희극지왕>보다 좋은 영화인가, 하면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어렵겠지만, 영화인 주성치의 고민과 성장이 영화 본연의 서사와는 별개로 남게 되어 가치가 발생하는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감독 주성치의 <서유항마편> 또한 배우 주성치의 서유쌍기를 뛰어넘었다고 볼 수 없었지만, 적어도 서유쌍기의 원래 감독이 만든 리부트 작품 <월광보합 리턴즈>보다 훨씬 좋았다.
이 영화의 좋음과 감독 주성치, 배우 주성치의 격렬한 승부에 대해서 더 길게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게 제가 새해에 스스로 떠올린 첫 숙제가 아닐까 합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박서련
“한편 홍콩 영화계의 화려한 한 때를 함께했던 주성치가 중국 배경으로, 보통화 영화들을 찍으면서 홍콩 민주화 운동에는 어떤 입장을 보였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