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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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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입춘이 다가왔다. 올해는 유난히 눈이 없어서 여름보다 겨울을 훨씬 좋아하는 나는 좀 슬펐다. 함박눈도 없이 미세먼지와 바이러스로 혼란한 겨울이라니. 아포칼립스물이 따로 없다. 덕분에 얌전히 방구석에 박혀서 노트북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는 꽤 도움이 되었다.
1월까지는 안전가옥의 원고와 개인적인 일들로 무척 바빴다. 2월이 되자마자 신기하리만치 순식간에 한가해졌다. 이사 때문에 내려온 본가의 동네는 서울과 같은 한국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하다. 원래 같았으면 익숙한 여행지에 온 기분으로 여기저기 싸돌아 다녔을 것이다. 2월에 잡아놓은 여행 약속만 수 개 였는데, 전부 취소가 되고 말았다. 가라앉은 기분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스크와 손 소독제, 책 한권을 챙겨서 집 근 처 카페에 가거나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는게 다다. 갑자기 밀려온 한가함에 뭔가 붕 떠버린 기분이다. 그나마 오늘은 월간 안전가옥이라는 할 일이 생겼다. 창밖으로 보이는 날씨는 아포칼립스가 아니라 청춘 로맨스물처럼 화창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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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에 뭘 했더라? 간만에 다이어리와 사진첩을 뒤져봤다. 한자와 낯선 글씨체가 가득한 종이를 찍은 사진이 나왔다. 친구가 다니는 대학원 근처의 타로 카페에서 신년 사주를 보았던 흔적이었다. 내 사주 명식과 기운, 닭띠, 어쩌고 하는 내용들 중에 ‘부부 사이!’ 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난데없이 부부사이라니!? 이게 어쩌다 나온 글자 일까, 기억을 더듬던 중 뭔가 떠올랐다.
“둘이… 부부사이였어……”
함께 간 친구와 내 궁합을 보고는,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가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했던 말이다. 갑작스레 친해졌는데도 여러가지로 잘 맞는사이여서 그말을 듣고 둘 다 크게 웃었다. 다른 한 친구에게는 둘 사이에 난 자식이었을 거라고 했다. 이제보니 완전히 막 갖다 붙였네…?
애초에, 두고두고 기억날 정도로 잘 맞는 곳은 아니었다. 누구나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두루뭉술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고, 있지도 않은 남자친구나 관심없는 미래의 남편 같은 이야기만 계속 했기 때문이다. (왜 계속 결혼 이야기만 하는지?! 너무 일찍 결혼하지 말라거나, 너무 늦게 결혼하지 말라는 말은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 중에 딱 하나 기억 나는 말이 있다. 나름 골똘히 한자를 써재끼던 아저씨가 불현듯 나에게,
“올해 자식운이 들었다!”
라고 말한 것이다. 일년 달력 중 6월에서 9월을 가리키며 자식운이 들었으니 결혼을 해도 되겠다고. 아니, 아까는 결혼 늦게 하라며?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고, 아저씨는 너무 쉽게 말을 바꿨다. 나는 더더욱 불신했다. 대학가라 싼 맛에 오긴 했지만 좀 괜히 왔다 싶었다. 그나마 궁합 100%라는 우정 테스트 아니었다면 웃지도 못했을 것이다.
악담에 가까웠던 그 말을 이제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좀 맞는 거 같기도 하다. 자식운이 들었다는 6월에 나는 ‘뉴젤대’를 출간했고, 9월의 사바스 행사로 출간 행사들을 끝맺었다. 뭐, 책을 쓰는 것도 세상에 뭔가를 내놓는 일이니, 끼워 맞추자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이야기를 주위에 하고 다녔더니, 곳곳에서 그 타로카페가 어디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굳이 추천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수염 긴 아저씨가 잘 맞춘다기 보다는 그냥 얻어 걸려서 맞은 거 같았으니까…….
사주라는게, 지금껏 읽어온 추리물의 복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뭐든 사건이 벌어지고나서, 혹은 범인이 밝혀지고 나서야 ‘이게 이런 이런 뜻이었다니!’ 하는게 꽤 닮았다. 그러니까 일단 무슨 일이든 벌어지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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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아직 신년운세를 보러가지 않았다. 매년 기분내기용 행사였는데, 이번에는 좀 잘보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여기 저기 뒤지다 보니 아직 정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건강염려증이 도진 쫄보 두명은 창궐하는 바이러스에 겁을 먹고 칩거하기에 이르렀다. 신년 운세 약속은 무기한 연기되었지만... 아직 2월이니까.
뭐랄까, 올해의 시작엔 이사가 많다. 본가와 서울의 자취방, 그리고 안전가옥까지 이사와 함께 신년을 시작했다. 별 생각없이 네이버 신년운세를 봤더니, 떡 하니 주거지의 이동이 있을 수 있다고 써있다. 오, 나는 또 솔깃해져서 전 월 운세를 다 훑었다. 다 보고나니 딱히 기억나는 건 없다. 이제 여기서 하나 둘 끼워 맞춰 가는거겠지 뭐. 이 중에 적당히 들어맞는 것만 기억에 남을 테니까. 좋은 건 기억하고 안좋은 건 잊어버려야지. 그게 여러가지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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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는 하고 싶은 게 많다. 청개구리 심보가 도져서, 갑자기 배우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늘었다.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걸 내 글에 녹여낼 수 있는 일년이 되었으면 한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조예은
“얼마전에는 일루미나티 카드 괴담(?)을 보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미신과 음모론은 언제나 흥미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