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월간 안전가옥, 운영멤버들은 "빌런인데.. 살다보면 가끔 생각나는 빌런"이라는 주제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현실의 누구를 보면 너무 닮아서, 빌런이지만 이 시대에는 '사이다'가 되어 줄 것 같아서, 실제로 있을 것만 같아서, 그냥 너무 무섭고 싫어서, 아니면 나를 닮아서(?) 생각나는 그 빌런에 대해 적어봤습니다.
*대상 콘텐츠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헤이든의 빌런
<마스터>의 랭케스터
영화
2020년 어떻게 보낼까
8월 중순에 홍대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중에 어느 버스커 팀을 만났습니다.
**이 공연은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이전에 안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팀 이름은 분리수거. 20대 중반인지 후반인지, 한참 홍대 근처를 배회하던 시절에도 이 팀의 공연을 본 일이 있어요. 홍대 근처에 자주 가는 분들이라면 한번쯤은 보셔서 아실 테지만 어쨌거나 보컬의 유머감각이 엄청난 팀입니다. 처음에는 뮤지션이 아니라 코미디언 그룹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그 팀을 몇 년이 지나 오랜만에 만나니 저 혼자 반갑더군요. 마침 친구도 늦어질 듯하니 잘 됐다 싶어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의 공연을 지켜봤습니다. 평소보다 큰 원을 그리며 하나같이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박수를 치거나 몸을 흔들고 있었어요. 마스크 위로 웃는 게 보인다는 건 찐웃음이라는 거잖아요. 모두들 즐거워보였습니다. 공연의 거의 막바지에 합류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곡이었고, 언제나 준비안 한 척 철저히 준비해 두는 앵콜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곡은 그들의 창작곡이었어요. 제목은 <2020년 어떻게 보낼까>
보컬은 “여러분 힘드시죠?” 라는 말을 시작으로 이 곡을 소개했습니다. 2020년은 가뜩이나 어려운 이들이 더 어려워 진 한해잖아요. 뮤지션인 이 분들 역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니 참 막막하더랍니다. 그래서 만든 곡이라고, 여러분도 힘내시라고 말을 맺으며 노래가 시작 되었어요.
사람들이 방방 뛰었습니다. 2020년 어떻게 보낼까를 노래하면서요. 저는 이 순간이 시간이 지나면 꽤나 의미 있는 장면으로 남을 것 같아, 핸드폰을 치켜들고 영상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이상하게 울렁였어요.
그건 그렇고. 이렇게 하나같이들 힘든데, J씨는 참 너무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야 말로 이 시대의 빌런이 아니고 뭐겠어요? 요즘은 빌런도 진화를 해서 빌런에게 나쁜놈!만을 외치진 않는데 이 사람은 가공하지 않은 100% 생빌런이에요. 정치인 옆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는 J씨의 사진을 보고 있으니 이 사람은 어딘가에 단단히 취해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코로나는 두 번의 큰 집단 행동으로 두 번의 고비를 맞이했지요. 한번은 신천지로 인한 집단 감염, 한번은 J씨를 선두로 한 태극기 집회를 통한 감염.
예전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이단 종교와 사이비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찾아보다 우연히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이단은 ‘다를 이’와 ‘끝 단’ 이라는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말 그대로 마지막이 다르다는 것, 기독교의 교리에 따라 성경을 해석했을 때 결과값이 다른 것을 이단이라고 하고, 사이비는 신이 아니라 ‘사람’을 따르도록 하면 사이비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람의 마음이 종교적 신에 대한 것과 교리를 말하는 매개자에 대한 것을 무게를 측량 하듯이 명확히 그 몫을 따질 수 있을까요? 구분해야만 하지만 자로 재듯 하긴 어려울 거예요. 그러다 보니 신앙인들에게는 그 마음을 구분해야하는 일종의 의무와 책임이 있죠. 그리고 일종의 유혹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그 마음의 측량을 꾸준히 해 나가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테고요. 그러니 많은 이들이 개독교니 어쩌니 하며 신앙인들을 비난하는 것도 옳은 태도라고 보긴 어려운 것 같아요.
어쨌거나, 우리들 모두가 마음 한구석에는 신앙이랄 것을 품은 채 살아갑니다. 마치 종교인들이 신과 매개자 사이에서 자신의 마음을 가늠하듯이 우리 역시 어떤 유혹들 사이에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정해가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최근 이 가늠하기와 조정하기에 실패한 두 집단의 행동을 보면서 개인의 부정확함이 모여서 다수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또. 또 일어났구나. 하며 한숨을 쉬게 되더라고요. 누군가를 현혹시키는 사람. 자신이 믿는 바를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수면 위로 드러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J씨처럼 어딘가에 푹 취해있거나, 또 누군가를 현혹시키는 사람이 요즘 같은 시기에는 가장 나쁜 빌런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런 빌런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 보니 진정한 의미의 빌런이라고 하긴 어렵겠지만, 영화 <마스터>의 랭케스터가 떠올랐습니다.
출처: imdb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는 프레디 퀠 (호아킨 피닉스 분)은 백화점의 사진기사로 살아갑니다. 어찌나 분노가 많은지 느닷없이 화가 폭발하는데다 이성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들어차서 좀체 사회 생활이 어려운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심약한 사람이죠.
프레디는 자신이 제조한 술에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술에 취해 유람선의 한 파티장에서 난동을 부리게 되고 다음날 랭케스터(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분)와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프레디는 정신분석 단체인 ‘코즈’ 연합회의 마스터, 랭케스터의 실험대상이자, 조력자이자, 친구로서 그의 곁에 머물게 됩니다.
랭케스터는 코즈 이론으로 정신 치료를 하는데 이 코즈 분석 방식은 인간의 윤회설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현재의 고통은 과거로부터 왔고 과거를 알면 현재의 고통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의 심약한 프레디는 랭케스터가 ‘프로세스’라 부르는 치료 요법에 참여해 세뇌 당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랭케스터는 자신의 프로세스를 비판하는 사람에게 불같이 화를 내거나, 모두가 나체가 되어 춤을 추는 등 괴상한 상황이 벌입니다. 프레디는 점점 진정한 마스터라 믿었던 랭케스터의 빈틈을 보게 됩니다. 그 역시 자신과 다르지 않은 불완전한 인간임을 깨닫게 되는 거죠. 결국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고 퀠은 랭케스터와 결별합니다.
랭케스터는 겉으로 보기에 상나쁜놈은 아닙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런 호인이 따로 없죠.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웅변 기술과 호탕함, 사람을 사로잡는 아우라 같은 것들이 휘휘 감겨 있는 인물입니다. 사람들은 랭케스터 곁에서 그의 아우라에 사로잡히고, 그의 말에 현혹되고 그를 결국 마스터라 부르기에 이릅니다. 그가 하는 행동과 말에 의심의 여지 따위 두지 않고요. 하지만 우리의 심약한 프레디 퀠은 떼어지지 않는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랭케스터의 불완전함, 과오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거죠.
이 시대의 빌런들은 어떨까요? 랭케스터의 모습과 꽤 닮아 있지 않을까요?
저는 프레디 퀠이 랭케스터를 떠나는 장면을 정말 좋아합니다.
광활한 황무지에 랭케스터, 딸, 사위, 프레디가 바이크를 타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포인트 찍기’라는 게임을 합니다. 저 먼 풍경에다 포인트를 찍고 바이크로 최대한 빨리 포인트 지점에 갔다가 돌아오는 게임이에요. 첫 타자로 랭케스터가 다녀옵니다. 프레디는 반대 방향으로 포인트를 찍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야 할 프레디는 그 방향으로 점점이 멀어집니다.
시선의 끝을 멀리 두고 마스터의 반대 방향으로 점점 멀어지다 마스터의 자장에서 마침내 벗어난 점. 여러 면모가 약하고 부서지기 쉬웠던 프레디 퀠이라는 인물이기에 그가 행한 멀어지기는 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에 현혹되어 살고 있을까요? 그 유혹 안에서 얼마큼 마음의 질량을 가늠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는 과연 황무지 끝을 향해 달려가는 프레디 퀠이 될 수 있을까요? 빌런에 대해 생각하다가 또 거창해지고 말았습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헤이든
"2020년, 하려던 걸 못 하고 한 해가 가버릴 것만 같아서 조급해집니다. 2020년 어떻게 보낼까요? 아직 네 달이나 남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