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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머치사생활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최수진
월간 안전가옥을 쓰기 시작한지 벌써 1년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아마도 파트너 멤버들 중에선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매달 무슨 얘기를 써야할지, 월 초가 되면 깊은 생각에 잠긴다.
매달 월간 안전가옥을 모르는 사람과 스몰토크 하는 기분으로 작성한다.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대화는 해야겠고 딱히 공통점은 없으니 내 사적인 얘기를 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탈탈 털려있는 내 신상. 그래도 그동안은 최대한 표면적인 신상에 대해서만 적었는데 이번 달은 사적인 농도가 조금 더 짙을 예정이다.
한 달 전 쯤 재밌는 카톡이 왔다. 3년 전,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친구도 아니었던 사람. 좋았던 기억보다 나빴던 기억이 오래 남는 사람. 다시는 연락할 일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그는 나에게 당시 같이 알고 있던 친구와 아직도 연락을 하냐고 물어봤고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 친구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그는 불편하지 않으면 나중에 밥이나 한끼하자고 얘기했다.
그는 예의가 바른 사람이다. ‘내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을 전제로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을 걸었고 ‘불편하지 않다면’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럼에도 그의 연락이 어이가 없었던 이유는 그가 다단계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소식을 알게 된건 연락이 오기 몇 달 전 일이다. 인스타를 둘러보다 그의 새 계정이 눈에 띄었다. 그가 회사 이름을 달고 있는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며 인스타에서 친구 추가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는지, 친히 추천을 해주고 있었다. 호기심에 들어가 본 계정. 그의 전공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왠지 모르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검색해보니 멀쩡한 금융회사인척하는 다단계 회사였다.(명백하게 다단계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적절한 표현을 하자면 그렇다) 뭐 그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나랑은 아무 상관 없지만, 왠지 나에게도 연락이 올 것 같다는 느낌이 강력하게 들었고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그는 좋은 사람이다. 호감형 외모에 유머러스하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나또한 그렇다고 절실하게 믿고 있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는 무례한 사람일 리가 없다.’라고 절실하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임에도 나에게는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 가장 불안정한 시기였다. 당시에 너무 어리고 멍청했던 나는 내가 엄청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아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거니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정말 다행히 그와의 만남 덕에 깨닫게 됐다. 다시는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현재로서 그에게 나쁜 감정은 없다. 부정적인 감정을 삼년동안 마음 안에 남겨두고 있을만큼 내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장을 차려입고 서류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내며 ‘수진아 잘 지냈어? 혹시 보험은 들었니?’ 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가 이 글을 볼 확률은 장담컨데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본다고해도 내가 크게 미안할 것도 없고. 그래도 굳이 한 마디 하자면 정말 쓸게 없었던 6월달 월간 안전가옥에 에피소드를 제공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최수진
"너무 사생활이라 불쾌하셨을 분들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