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고 하면 괜히 하고 싶은 심보란 왜 그러는 걸까요. 코로나19 이후 나라 간 이동이 사실상 막히고 사람 많은 곳에 모이는 것이 지양되는 분위기가 되고나니, 괜히 더 여행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간 가고 싶었던 곳들을 괜히 떠올려보고, 검색하고, 구글 지도에 핀을 꽂아보고 하죠. 사실 기약 없는 여행을 준비하며 구글 지도에 핀을 꽂는 건 제 소소한 취미이기도 해요.
이런 ‘리스트’를 업데이트하는 방법과 기준은 서로 다 다르겠습니다만, 제겐 콘텐츠입니다. 무언가 책이나 영화, 애니 등을 보고 감동을 받으면 그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거나 모티브가 되었던 곳을 가보고 싶어지죠. 그리고 그 곳에 가서 그 콘텐츠를 다시 떠올려보는 겁니다. 물론 실제는 콘텐츠 속 장소와는 차이가 크고, 높은 확률로 후줄근하지만.. 나름대로의 감동이 있어요.
작년 겨울 제가 떠났던 추방(휴가)지는 터키였습니다. 기본적으로 즐길거리 많은 관광도시 이스탄불이지만, 제게는 추리소설(?) <내 이름은 빨강>의 세큐레가 사는 도시, 그리고 영화 <알라딘>의 도시였습니다. 톱카프 궁전의 오스만 제국 세밀화를 보며 엘레강스의 죽음을 궁금해하고, 갈라타 다리에서 수면에 비친 모스크를 내려다보며 프린스 알리를 흥얼거리곤 했죠. 제 나름의 덕질이랄까요.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 배경/모티브가 된 장소에 간다는 건, 역사학자가 유적에 가고, 생태학자가 오지를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이돌 팬덤의 덕질에 더 가까울 수 있겠네요) 일종의 답사라고 할 수 있죠. 단순히 먹고 즐기는 여행이라기보단, 내가 ‘팠던’ 콘텐츠의 본질에 한 발 더 가까이 가는 경험이니까요. 네, 저는 덕후고, 제게 여행은 덕질입니다. <알라딘> 파다가 이스탄불까지 가버린거죠.
꼭 외국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지역’의 느낌. 이런 요소가 들어있는 콘텐츠가 ‘답사’를 부르는 듯 합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말투, 음식, 옷이 주는 자극이 우리가 일상에서 받는 자극과는 뭔가 조금씩 다를 때, 그걸 머릿 속에 담아두었다가 여행지에 가서 다시 꺼내보는거죠. 아 이야기 속 그게 이거였구나! 하는 아하 모먼트와 함께 말이죠. (<바닷마을 다이어리> 속 잔멸치덮밥이 생각나네요)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와 캐릭터. 그가 살아 숨쉬었던(혹은 그 모티브가 되었던) 곳. 그 곳까지 독자를 직접 불러들일 수 있는 콘텐츠. ‘좋은 콘텐츠’를 정의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답사를 부르는 콘텐츠인가’도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 속 그 곳에 가고 싶어졌나, 실제로 갔나, 가서도 비슷한 혹은 그 이상의 감동을 느꼈는가. 그런걸 만들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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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에서 성남, 여수, 제주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더 먼 곳이 배경인 이야기도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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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출신 사람으로서, 제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 곳들이 사랑스럽게 등장하는 이야기를 보고싶기도 합니다. 5.18 외에도 광주의 이야기는 많아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뤽
"<마녀배달부 키키>와 <모노노케 히메>를 보고 스톡홀름과 야쿠시마를 리스트에 올렸습니다만.. ‘위시'가 언제 현실이 될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