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동안 두 권이 책이 연달아 출간됐다. 한 권은 단편 소설을 엮어 만든 <어떤 물질의 사랑>이고, 한 권은 한국과학문학상에서 내게 상을 안겨 줬던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이다. 각각 7월과 8월에 출간된 책들을 9월에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하고 싶은 말들은 작가의 말에 다 적어두었으니 여기에 적는 것은 그곳에 미처 적지 못한, 탈락된 문장들이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문예창작과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열일곱, 주저 없이 편입 시험을 봤다. 이 말은 인터뷰에서도 몇 번 언급했으니 그다지 새롭지 않다. 내가 여기서 하려는 말은 ‘편입 그 후’이다. 17살부터 대학원 석사 수료를 했던 25살까지. 근 9년의 세월동안 나는 문예창작과를 다니며 창작이 무엇인지,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웠다. 아마 배웠을 것이다. 등록금을 냈고, 수업을 들었고, 소설의 골조가 무엇인지 배웠으니까. 탄탄하게 글을 쓰는 방법과 소설을 이루는 기본 요소들(인물, 사건, 배경 등등)을 알차게 배우고 나에게 남은 건 ‘완벽한 글’이다.
배경이 탄탄하고, 서사가 짜임새 있으며 캐릭터가 생생하고 동시에 소설의 시의성이 타당한 것. 거기에 소설의 심미적 요소를 더하는 아름다운 문장까지. 문장과 문장이 끈끈하게 이어지고, 인물이 뱉은 말은 그 세계에 반드시 어떤 파동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내가 배웠던 이론처럼 소설이 써진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런 소설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걸 인정하고, 포기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설은 어떤 이유이든 간에 완벽해질 수 없고 그렇기에 절대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상향처럼 쫓던 ‘완벽한 소설’이란 허상을 접어두고 이제 내 스스로 소설을 다시 정의 내려야만 했다. 소설은 무엇일까. 소설을 공부하고 쓴다는 건, 그러하여 완벽에 가까운 소설이란 과연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내가 내린 답은 이렇다. ‘고민되어진 소설’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소설’이었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세계가 단 한 명에게라도 필요하다면, 그리하여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단 한 명이라도 내 소설로 인해 꽉 막힌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해답을 찾는다면, “쓰자.”
무언가를 배우고 연구한다는 건 완벽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완벽하다라는 말은 결국 ‘무언가를 틀렸다’라는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 틀린 소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창작자가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창작자에게는 오로지 ‘고민되어진 소설’과 ‘고민되어지지 않은 소설’만 존재할 뿐.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게 되더라도, 혹 그 소설들이 나를 더 빛나게 해주더라도 나는 <어떤 물질의 사랑>과 <천 개의 파랑>을 가장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겁 많은 작가를 대신해 세상에 나가 치열하게 버텨줘서 고맙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천선란
"‘틀린 소설’의 우물에서 빠져나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