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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키튼>의 키튼

분류
운영멤버
스토리PD
작성자
2020년 9월 월간 안전가옥, 운영멤버들은 "다시 태어난다면 이 캐릭터로"라는 주제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나는 못하는 말을 하는 '사이다캐'라서, 돈이 많아 보여서, 행복해 보여서, 초능력이 있어서, 천재라서 등등.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혹은 남은 여생을 바꿀 수 있다면, 이 사람 혹은 이것(?)으로 살고 싶은 그 캐릭터에 대해 적어봤습니다. *대상 콘텐츠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시에나는 다음 생에

<마스터 키튼>의 키튼 만화

살아남기의 기술을 마스터한 사람

다시 태어난다면 이 캐릭터로 살고 싶다는 이번 월간 안전가옥 주제를 들었을 때, 어째선지 바로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 히라가 다이치 키튼이 떠올랐습니다. <마스터 키튼>은 <몬스터>, <20세기 소년> 등을 그린 일본의 유명 만화가인 ‘우라사와 나오키’가 88년부터 연재하여 94년도에 총 18권으로 1부를 마무리한 오래된 만화책입니다. 그리고 제가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집어드는 만화책이기도 하며 언제나 n회차 하고 있는 콘텐츠이기도 합니다. 여러 에피소드가 담겨있는 옴니버스 형식이라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단 주인공인 키튼에 대해 말해보자면, 키튼은 일본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으로, 외견은 동양인처럼 보이지만 영국 국적자로, 그가 가진 경력이 참 재미있습니다. 일견 보이는 스펙이 참 대단합니다. 영국 최고의 사립 기숙사 학교인 세인트 에드몬드 학교를 졸업하고, 옥스퍼드 벨리얼 칼리지(Balliol College)에서 고고학으로 석사까지 전공하여 고고학자가 되는데요. 대학원에 가기 전에는 자진하여 영국 육군에 복무, 입대 3년 후에는 영국 특수부대인 SAS(Special Air Service)의 부사관이 되어 능력을 크게 인정받고 역대 최고의 서바이벌 분야 교관 (Former SAS Survival Instructor)으로 불리게 됩니다. 80년에 벌어진 이란 대사관 인질사건 구출 작전에 투입되었고, 전역 이후 82년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하자 그의 특기 때문에 재소집 될 정도이지요.
그 이후 자신만의 학설을 위한 논문을 집필하기 위해 일본의 한 대학교에서 고고학 시간강사로 일하지만 동시에 세계 최대의 보험 조합인 로이즈에서 보험 조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업무는 우리가 흔히 아는 보험설계나 계리사가 아니라 보험 사기를 밝혀내는 수사관에 가깝습니다. 한마디로 탐정이지요. 고고학적 지식과 SAS에서 익힌 서바이벌 기술이 절묘하게 결합된 방식으로 그는 로이즈에서 의뢰하는 일들을 항상 잘 처리하는데요. 특히 무기의 식별이나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 산악에서의 생존, 수영이나 달리기, 복싱이나 판크라치온(일종의 고대 레슬링), 나이프 파이팅, 폭탄 해체 등 그의 각종 생존 기술은 위험한 의뢰 속에서 그를 지키며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데 있어 큰 힘을 발휘합니다.
(참고 : 만화 마스터 키튼 현실고증 https://principlesofknowledge.kr/archives/39364)
거기에 그는 언어 능력도 특출 납니다. 모국어인 영어와 일본어는 물론이거니와 현대 독일어에 고대-중세 독일어 해석 전문가이며, 걸프지역 아랍어 방언은 현지인도 착각할 정도이고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루마니아어, 간단하지만 위구르어까지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만화이기에, 캐릭터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현실에는 더욱 대단한 사람도 꽤 있긴 합니다.

살아가기에 도전하는 사람

온갖 사기스러운 기술과 화려해 보이는 이력과 경력과 달리 그는 사실 꽤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가 5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하여 어머니의 고향인 영국에서 혼혈인으로 자랐고, (동물생태학자인 아버지와는 사이가 무척 좋고, 어머니는 무려 영국 귀족 출신이라 큰 문제는 없습니다만) 본인도 옥스퍼드 재학 시절, 일본인 유학생과 결혼하여 딸을 나았지만 결국 이혼하였고, SAS 복무 시절에는 능력을 인정받긴 했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그곳에서 결국 자신의 로맨티스트적인 성격과 결함을 깨달아 사관이 아닌 부사관으로 제대하였고, 대학원 석사 시절에는 은사인 유리 교수가 당시 이단으로 치부되던 도나우 문명설을 믿어 학계에서 매장당했고, 본인은 그 학설이 인정받을 수 있게 활동하려 하지만 그 역시 학계에서 왕따 취급을 받아, 먹고 살기 위해 그리고 발굴 작업을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하기 싫은 하지만 할 수 있는 능력이 넘쳐나는 보험 조사원 일을 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조금은 한심한 아저씨로 보이기도 합니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자신을 동경하는 조카에게 (나를) “봐라! 이 얼마나 한심한 인생이냐!”라고 외쳤을 정도입니다.
사실 그가 가진 것들은 동시에 그에게 일종의 결여로서 이미 주어진 것으로 정(正)과 반(反)을 한꺼번에 내재하고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점들이 제가 <마스터 키튼>을 n회차 감상하게 되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키튼은 정반에서 혼란을 겪는 인물이 아니라 제가 보기엔 합, 정반합(正反合)으로 나아가려는 인물이기에 그렇습니다.
그의 여러가지 성공과 실패, 능력과 경력 등은 그의 생존과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오로지 꿈을 쫓습니다. 아무도 발굴해내지 못한, 아무도 주목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문명에 대한 발굴과 그 의미에 대해서만 눈을 반짝이고, 그것을 추적할 때만 기쁨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키튼은 체 게바라의 그 유명한 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에 딱 해당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에피소드 내내 어려움을 겪지만 인간적인 교류와 꿈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태도로 인해 결국 1부 마지막 대단원에서 도나우 문명에 대한 단초를 발견하게 됩니다. (도나우 문명설은 만화적 각색이 많이 들어간 학설이긴 합니다)
요약하자면 키튼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 아니라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더 재미있는 점은 10대에 읽었을 때와 20대 때, 30대 때 각각 느껴지는 점이 다른 것 입니다. 어릴 때는 키튼이 가지고 있는 능력 자체에 더 관심이 많았고, 20대에는 외유내강한 지점과 작품 전체에 내포된 80년대 유럽의 근현대사와 고대사적 지식, 30대에는 키튼의 나약한 지점이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는 멈추지 않고 꿈을 이루려는 태도에서 새삼스럽게 작품의 의미가, 캐릭터의 성격이 다가옵니다.
이번 월간 안전가옥 작성 기념으로 다시 한번 만화적이지만 현실적이고, 현실적이지만 만화같은 키튼의 여정을 따라가보려고 합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테오
"한때 작품 속 SAS를 흠모하여 나중에 군대가면 프랑스 외인부대 라도 가야지 했던 건 어릴 적 흑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