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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 박치, 그리고 기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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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길치라는 걸 알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길을 잃어버린 경험 때문이었다. 분명 친구들과 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혼자였다. 그때 나는 씽씽이(요즘 말로 하자면 퀵보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타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혼자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나는 기억을 필사적으로 더듬어 집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점점 집과는 멀어졌고 더 낯선 곳만 나타났다. 분명히 이 길이 맞는 것 같아 모퉁이를 돌아도 우리 집은 나오지 않았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 씽씽을 탈 수도 없었다. 나는 씽씽이를 끌면서 낯선 거리를 걸었다. 길을 잃어버린 게 분명했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다.
그때 (역시나) 낯선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붙잡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꾀죄죄한 몰골로 씽씽이를 끌면서 돌아다니는 나를 이상하게 여겼던 것이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길을 잃어버렸다고. 다행히 나는 집 주소를 외우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주소를 듣더니 여기서 가까운 곳이라며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결국 그 아주머니 덕분에 나는 집을 찾을 수 있었고, 엄마에게 등짝을 맞을 수도 있었다.
박치 역시도 일찌감치 알았다.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는 가창 시험을 보는데 나보다 노래를 못하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됐는데 나는 꼭 박자를 틀렸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첫 시작부터 한 박자가 늦으니 끝까지 부르지도 못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건우야. 미안하지만 넌 안 될 것 같다. 너처럼 박자 감각이 없는 아이는 처음 보는구나.”
선생님도 인정한 박치인 나는 자연스레 음악 시간만 되면 위축됐다. 나중에 리코더를 배울 때도 고생했다. 소리는 제대로 내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박자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런 까닭에 나는 지금도 남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싫어한다. 노래방?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남자라면 으레 기계에 관심이 많고 또한 잘 다룰 거라는 편견에 맞선 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다. 나는 기계에 관한 관심도 없었고 잘 다루지도 못했다.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어야 새 제품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며칠 정도 지나면 까먹어서 다시 설명서를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위 친구들은 컴퓨터 부품을 사서 뚝딱뚝딱 잘도 조립했는데 요령 없던 나는 친구들에게 부탁을 하거나 아니면 기성품을 살 수밖에 없었다. 잠시 도시가스 기사로 알 할때도 공구를 잘 다루지 못해 애를 먹었다.
앞에서 열거한 이 세 개는 어른이 되고서도 계속 남아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박자를 못 맞추고, 처음 가는 장소는 30분 이상 헤매고(지도 어플을 보면서도!), 기계를 잘 다루지 못해 안 써도 될 돈을 들인다.
처음에는 불편하기도 해서 고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이제는 나만의 고유한 특징이라 여기며 그냥 산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직업이 소설가일지도 모르겠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만 쓰면 되니까. 적어도 나는 글을 쓸 때 만큼은 길을 잃지도 않고 박자를 못  맞추지도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 해소가 되는 건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키보드의 특정 키가 작동을 하지 않아 당황하고 있으니까.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것저것 상세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렇지만 난 조금도 알아듣지 못했고 결국 이렇게 물었다.
“그냥 키보드 새로 살까?”
그래서 지금 키보드를 검색 중이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전건우
"두통이 심하다. 딱따구리가 쪼아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