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가디언 멤버 OU
내 인생과 가치관, 미래관, 문화 취향까지 많은 부분에 미국의 영향이 강하게 베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심지어 이러한 이중 부정 문장구조까지. 내가 하는 사업의 영역인 자선과 비영리, 임팩트 투자에서도 많은 부분은 항상 미국에서 나온 연구 결과들이나 사례들을 보고 있고, 평소에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 보는 컨텐츠들도 대부분 미국의 컨텐츠들이니, 그야말로 훌륭한 미국의 앞잡이라 할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대학교 때부터 만화와 웹툰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렇게 미국 컨텐츠들을 봐와서, 처음 미국에 펠로우쉽을 갔을 때 적응도 무척 쉬웠지 않았나 싶다. 그들은 컨텐츠에 나오던 모습들 그대로 자유를 사랑하고, 평등을 지향하며,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했다.
하지만 실제로 사업을 시작하고, 대학원 때문에 제대로 ‘살기’ 시작하면서 문화 컨텐츠에는 나오지 않는 미국의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었고, 그 중심에는 ‘인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종적으로 단일한 국가, 그리고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인 한국에서 사는 나로서는 미국의 곪아 터지고 있는 인종 문제를 헤아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그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포용과 다양성’을 지지할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 2020년 2월 백인 부자가 조깅 중이던 흑인 청년 아흐모드 아버리를 추격해 살해한 사건, 3월 13일 자신의 집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총격 받고 사망한 브레오나 테일러 사건, 5월 25일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애완견의 목줄을 채워달라고 요청하는 흑인 남성에게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위협하고 실제로 ‘흑인 남성에게 공격당한다’고 거짓 통화를 한 에이미 쿠퍼와, 같은 날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8분간 살려달라고 애원하다가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까지.
연달아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인종 이슈에 대해 전혀 해결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정부 덕분에 미국 전역의 온오프라인 커뮤니티가 모두 격랑에 휩싸였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한 시위는 뉴욕, 워싱턴 DC, 애틀랜타 등 미국 전체로 퍼져 나갔고, 약탈과 방화로 격화되기 시작했다. 한인들은 1992년 LA 폭동의 트라우마가 남아있기에 이번의 시위와 폭동이 어떤 식으로 악화될지 걱정하고 있고, 한국의 인터넷 민심도 이러한 트라우마를 반영하듯 반복적으로 폭동과 약탈을 일삼는 것은 흑인들의 본성이고, 인권 타령할 것 없이 미국 공권력은 이번 시위와 폭동을 강경 진압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이성적으로는 Black Lives Matter를 지지하고, 미국의 인종 차별과 경찰 폭력이 도를 넘었다는데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시위대들은 폭력적인 저항과 약탈을 저질러야만 했을까 미묘하게 불편함을 느끼던 차에, 그런 심정적 불편함 또한 내가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누리던 ‘특권’에서 기인했다는 걸 깨우쳐주는 영상을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미국 컨텐츠 중 꾸준히 보는 것들 중 하나가 심야토크쇼인데, 개인적으로는 유명 연예인들과의 인터뷰로 시청률을 노리는 지미 팰런 같은 토크쇼보다는 호스트 본인이 유머와 위트로 무장한 코난 오브라이언, 존 올리버, 트레버 노아를 선호한다. 개인적으로는 2017-8년 정도까지는 코난을 그 이후로는 존 올리버를 가장 좋아하는데, 트레버 노아는 그의 개그 센스가 재미있지는 않지만 남아공 출신의 혼혈로 자라온 배경에서 인종 이슈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하지만 묵직한 메세지를 전달해서 좋아했다.
5월 30일 트레버 노아는 ‘George Floyd, Mnneapollis Protests, Ahmaud Arbery & Amy Cooper’란 제목의 영상을 통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시위들과 그 아래 깊이 미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인종 차별 이슈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가 ‘흑인들이 인종 차별로 인한 피해를 받는건 안타깝지만, 그래도 약탈과 방화는 범죄 아니냐’고 질문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준 답변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았다.
“약탈과 폭동이 안된다고? 왜 안될까? 그건 개인들과 사회가 맺은 계약 때문이잖아. 개인들이 사회가 정한 법규를 지키는 대신, 사회는 개인들을 보호해준다는 계약. 하지만 사회 쪽에서 개인들을 보호해준다는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거지?
흑인들이 제도적인 차별에 의해 복지에서 소외되고, 코로나 같은 질병 대유행이 발생하면 사망자도 가장 많고, 그로 인한 경제 위기로 일자리도 가장 먼저 잃고, 에이미 쿠퍼 같은 백인들에게 거짓으로 범죄자로 내몰리고, 아흐모드 아버리처럼 무고하게 목숨을 잃어도 살인자에게 처벌이 가해지지 않고, 조지 플로이드처럼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살해당하면, 그때도 개인이 약속을 지켜야 하는건가? 사회에게 먼저 계약을 파기 당한 개인들이, 사회 질서를 지키는 계약을 지켜야 할 동기는 어디 있는거지?”
사회계약론을 충실히 받아들이는 이 주장은, 흑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특권층에 속하는 나로서는 ‘사회에 의한 폭력’을 경험할 일이 거의 없었고, 그렇기에 사회에 의해 차별 받는 흑인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는 폭력 행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의 흑인 커뮤니티는 너무나 오랜 시간 차별 받고 고통 받아왔고, 시간이 흐르면 더 나아지리란 희망은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부풀었다가 트럼프의 당선으로 스러졌다. 이제 흑인들이 경찰들의 과잉 진압에 상해를 입는 것은 뉴스도 되지 못하고, 조지 플로이드처럼 8분에 걸친 고통스러운 사망쯤 되야만 헤드라인을 장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미국 전역의 경제를 마비시킨 코비드19은, 흑인들이 지키고 싶어할 만한 것들을 남김없이 가져가버렸다.
수없이 누적되어온 차별과 코비드19로 인한 경제 위기에서 폭발하는 흑인 커뮤니티의 분노와, 그런 시위대를 무조건적으로 ‘폭력 세력’으로 규정하고 악마화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결은 우려스럽기 그지 없다. 한국도 아직까지 갈 길이 먼 여성 인권과 소수자 인권, 빈부 격차의 구조화를 생각해보면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위가 마냥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닌 것 같아 이래저래 마음만 복잡해져 가고 딱히 답은 보이지 않아 슬픈 나날이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가디언 멤버 OU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아직도 시위대의 많은 사람들은 평화적인 시위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고, 시위 이후의 쓰레기와 파괴된 잔재들을 치우고 있다는 거네요…이런 건 기사에 잘 안 내보내는 미디어들 보면 또 답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