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충의 시작
눈치…채셨을 수도 있겠지만 전 사실 빵을 엄청 좋아합니다. 특히 재미없는 빵을 좋아해요. 크림도, 팥도, 다채로운 장식도 과일도 필링도 없이 오직 쫙쫙 찢어지는 결로만 승부하는 빵. 바삭한 구움색과 고소한 향으로 유혹하는 빵. 식빵, 바게트, 크루아상, 모닝빵, 치아바타 같은 종류지요.
그런 제가 소금빵 대유행이 시작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짐작 가시는지요. 1일 1빵은 기본이었습니다. 한국의 디저트 세계는 유행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것을 순식간에 보편화하는지요. 유행이 번질수록 동네 빵집부터 유명한 베이커리까지 앞다투어 소금빵을 내놓았고 저는 사냥하듯 새로 생긴 소금빵 맛집들을 찾아 빵지순례를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름 사 온 소금빵을 집에 와르르 쌓아두고 바라보는데 문득,
귀여운 애벌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꼬물거리고 있는 것 같은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예… 여기서 좀 의문스러우셨지요…?
고백하자면 저는 곤충도 엄청 좋아한답니다.
빵과 충. 사실 한 문장에 나란히 놓이기 쉽지 않은 단어지요. 빵은 우리에게 친숙하고 따뜻하고 무해한 느낌인데 충은 우리에게 멀고 때때로 위협적이며 두려운 느낌을 줍니다.
포근하고 말랑한 빵과,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벌레가 한순간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빵은 인간이 오랫동안 자신의 세계 안으로 길들여온 음식입니다. 농경이 시작되기도 전 수렵채집인들조차 야생 곡물을 빻아 납작한 빵과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빵 맛에 반한 인간들이 그 뒤로 밀을 길들이기로 결심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반면 우리가 길들인 곤충은 손에 꼽힙니다. 대부분의 충은 좀처럼 우리의 세계 안으로 환대받지 못하고요. 아니, 인간이 세운 질서와 통제가 우습다는 양 제멋대로 넘나들기 일쑤죠. (갑자기 등장해 거리를 새까맣게 물들였던 러브버그처럼요.) 충은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침입자가 되고, 증식하는 순간 공포가 됩니다.
하나는 인간이 오래도록 통제해온 것처럼 보이는 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끝내 통제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토록 상반된 두 존재를 하나의 이름으로 묶었을 때, 무해함과 유해함이 공존하는 모순에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빵충이 태어났습니다.
취재
『빵충 사육 준수 사항』에는 제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직업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그래서 집필을 위해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야 했는데요. 그중 가장 만나기 어려웠던 사람은 단연, 농부였습니다.
농부는 정말 바쁩니다. 정말입니다. 메일도 잘 확인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농부님을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났고… 다들 답이 없으셔서 결국 청년스마트팜 귀농귀촌 교육을 이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신 분들, 청년 농부 카페에서 만난 분들, 인터넷에 농사 일기를 올리던 청년 농부 블로거들까지. 여러 고마운 인연 덕분에 정한이 재배할 작물을 정하고, 그의 농사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농사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초반에 농사 이야기를 정말 많이 썼었는데요…. 빵충의 등장이 너무 멀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빵충이 67쪽부터 등장하지만 정말 초창기 원고에는 100쪽쯤에 등장했습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농사 이야기를 대거 삭제했습니다. (참고: PD의 기획 노트 https://safehouse.kr/blog/breadbug01)
(참, 취재 중에 모르는 할머니께서 갑자기 절 붙잡고 알려주신 게 있어요. 고라니가 자꾸 콩밭에 콩을 뜯어먹으러 온대요. 그때 밭 주변에 깨를 심으면 고라니가 콩을 안 먹는다고 합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된 이야기인지는 모릅니다. 할머니는 이걸 왜 제게 알려주셨을까요? 저는 콩을 키울 것 같은 관상인 걸까요?)
그 밖에도 트럼펫 전공자와 여러 음악인을 만나 정한의 캐릭터를 잡아갔고, 마약과 시위에 관한 장면은 경찰 관계자분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여기서 밝힐 수 있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오프 더 레코드
초창기 안전가옥과 협의했던 분량은 7~800매였습니다. 첫 장편인지라 분량에 대한 감이 없어서 그렇게나 많이 쓸 수 있을까 싶었는데요. 웬걸, 막상 쓰다 보니 등장해야 할 인물도, 벌어져야 할 사건도 너무나 많았습니다. 최대한 압축해서 숨 가쁘게 달렸는데 초고를 끝낸 순간 1,200매 가까이 나와서 기절초풍이었습니다(!!!)
여기서 400매를 숭덩 잘라내라고 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안전가옥에서 이야기를 모두 살려주셨습니다.
(생명의 은인, 안전가옥!)
물론 삭제한 에피소드들도 많습니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는 김경민과 신언주, 그리고 인섹트 솔루션을 중심으로 한 별도의 이야기도 마련해두었습니다. 괴생물체를 분류하고 격리하는 비밀 기관인 SCP를 연상시키는 서사였는데요. 그 자체로는 흥미로웠지만 신언주의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풀린 상태였고, 여기에 인섹트 솔루션의 서사까지 더해지면 오히려 정한의 이야기가 흐려지는 느낌이 들어 이야기의 중심과 분량을 고려해 삭제했습니다.
빵충의 모든 등장인물은 깊은 애정을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그중에서 순도 높은 악의를 가진 캐릭터를 김경민으로 잡았었는데요, 경악스러운 김경민의 서사가 풀리지 않아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또 신정수는 원래 양돈 농장의 임신사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예정이었는데요. 여러 사정으로 지금의 장소에서 결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원래 구상했던 결말과 비교하면, 신정수에게는 지금이 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사실 안영돈도… 여러 사정으로 호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끝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책 속에 모두 풀어놓은 터라, 저는 이쯤에서 입을 다물도록 하겠습니다.
사육 준수 사항은 책 속에 적어두었습니다.
물론 이를 지키지 않아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안전가옥과 저 모두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
야생에서 만나요.
김혜영 작가님이 직접 제작하신 『빵충 사육 준수 사항』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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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 『빵충 사육 준수 사항』 작가
괴물을 사랑한다. 이 말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편영화 〈BJ PINK〉와 〈소년의 자리〉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단편 수상 작품집 2021』에 수록된 단편 「토막」과 안전가옥 앤솔로지 『호러』에 수록된 단편 「습습 하」를 집필했으며, 단편집 『푸르게 빛나는』 『그분이 오신다』를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