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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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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발매니저
20대 초반, 1년 정도 배를 타고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바다에서 군 생활을 했기 때문인데 처음 발령이 났을 땐 막내로서 요리, 청소, 빨래 등 함정 내부의 일을 담당했다. 그래서 외부의 일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니 출입항 시 선임들이 하는 일을 지켜볼 수 있었다. 가장 처음으로 구경한 것이 홋줄 던지기였는데 배가 입항할 때 육지에 있는 계선주(배를 매어 두기 위하여 부두에 세워 놓은 기둥)에 홋줄을 걸 수 있도록 육지로 던지는 일이었다.
​자동차와는 달리 배는 계속적으로 출렁이고 있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므로 입항 시 준비해야 할 사항이 조금 더 많다. 그래서 홋줄을 던지는 것은 입항의 첫 시작이기도 해서 간단해 보이지만 중요한 업무였다. 너무 멀리에서 던지면 육지에 도달하지 못해 바다로 빠져버리고, 배의 부피 상 너무 가까이에서 전달하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히 육지와 가까워진 때를 잘 맞춰 각 계선주 위치로 정확히 던져야 했다. 이후 모든 홋줄이 계선주에 끼워지고 나면 배와의 장력을 맞춘 뒤 육지에 정박하게 된다.
​얼마 뒤 내가 처음 홋줄을 던지기로 한 입항 날이 정해졌다. 그러자 선임은 일과 시간에 나를 부르더니 던지는 방법 및 노하우, 위험한 상황과 그런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홋줄을 던지는 것보다 던지고 나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계선주에 걸린 홋줄을 육지와 배가 멀어지고 붙는 타이밍에 적당히 풀고 당겨줘야 하는데, 이때 사고가 많이 날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이 말을 들으니 긴장이 많이 되었지만, 덕분에 최고의 집중력으로 시뮬레이션 해 볼 수 있었다. 며칠 뒤, 처음으로 홋줄을 던지는 날이 왔고 다행히 칭찬을 받았다.
​제대 후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홋줄을 던지고 입항할 때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곤 한다. 더 정확하게는 그때의 마음가짐이 생각난다. 간혹 섣불리 쉽다고 여겨 연습하지 않는 것을 경계하고,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숙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며, 홋줄을 던지는 것처럼 주목받는 일 뒤에 꼭 필요한 일이 남겨져 있다는 것들에 대해 말이다. 그런 것들이 모여 배가 안전히 떠 있을 수 있게 하니까.

Right time, right place

올해 나의 슬로건이다. 매년 마음속에 담을 슬로건을 하나 정하는데, 큰 목표라기보다는 올해를 살아가며 잊지 않을 신념 하나를 새기고자 시작한 규칙이다. 어느덧 3년째가 되었는데 사실 이 문장을 올해의 슬로건으로 정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겉도는 말만 많고 핵심을 담은 것이 없어 하나의 문장으로 추려내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게 1월 중순이 될 때까지 정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작년에 쓴 나의 글을 뒤적이다 이 ‘홋줄 던지기’가 적혀진 글을 읽었고, 올해는 이것이다 싶었다. 목표 지점에 가장 잘 닿을 수 있는 곳에 제 시기에 서 있는 것.
홋줄 던지기에 가장 적절한 때는 언제인지, 가진 홋줄이 육지에 잘 닿을 수 있도록 배에 잘 정돈되어 있는지, 혹시 삭은 줄은 없는지.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쿤
"올해에는 오리배라도 타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