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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 우먼 킬>을 봤습니다

분류
운영멤버
스토리PD
작성자
조이
운영멤버들의 6월 월간 안전가옥은 "이번 달에 본 콘텐츠"라는 주제로 작성되었습니다. 안전가옥에서 일하는 운영멤버들은 6월 한 달 간, 어떤 영화, TV쇼, 책, 만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지 함께 살펴봐요 *대상 콘텐츠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조이가 본 콘텐츠

와이 우먼 킬 Why Women Kill TV 시리즈 왓챠, 총 10화
출처: 왓챠

내가 사랑한 누아르

영화를 공부하던 학생 시절, 저는 짙은 그림자와 허무한 눈빛, 거대한 음모와 부조리한 희생자가 나오는 필름 누아르 영화들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프랑스 비평가들이 ‘검은 영화’라는 의미로 이름 지은 이 경향은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반 할리우드를 지배했습니다. 1930년대보다 기술과 사회는 발전했지만, 고도로 발달한 이 도시는 결코 안전할 수 없고 익명성과 소외가 팽배할 뿐이라는 공통의 감각을 대중들이 느끼던 시기입니다. 저는 시스템화해서 외려 실체가 보이지 않는 악과 그에 저항하는 미미한 인간의 고독한 몸짓(?)이 좋았습니다. 주인공이 공동체의 질서에 통합되지 않는 엔딩도 마음에 들었고요.
이제 저는 예전만큼 필름 누아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좋아하는 몇몇 영화가 있지만, 선도 악도 남자들끼리만 행하는 비장한 세계를 이전처럼 진지하게 못 보겠어요. 그래도 취향의 뿌리는 쉽게 변하는 게 아니죠. 여전히 공고한 시스템의 뒷골목 이야기에 홀려요. 그래서 최근에 왓챠 시리즈 <와이 우먼 킬>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봤습니다.

여자는 총을 들고 돌아온다

<와이 우먼 킬>의 세 여자 주인공은 1963년, 1984년, 2019년에 한 집에서 결혼 생활을 합니다. 각 시대를 대변하듯 주인공은 가정주부, 부유한 파티걸, 변호사로 직업도 성향도 다르지만 남편의 외도와 거짓말, 기만으로 각자 가정에 위기가 닥칩니다. 그때 내린 선택이 그들을 살인으로 이끌죠.
전통적으로 가정만큼 안전하다고 믿어진 공간이 또 있을까요? <와이 우먼 킬>은 가정과 결혼 제도의 위기와 모순, 그에 수반한 범죄를 다루는 ‘도메스틱 스릴러’ 혹은 ‘칙 누아르’ 장르 작품입니다. 데이비드 핀처가 영화로도 만든 길리언 플린의 소설 <나를 찾아줘>의 성공 이후 꾸준하게 인기를 누리는 장르죠. 한 장르의 유행은 그 장르가 반복해서 다루는 갈등이 대중에게 호소력을 지닐 때 나타납니다. 또한, 어떤 대립은 본질적으로 해결 불가능하며 화해할 수 없기 때문에 꾸준히 반복되어 ‘장르화’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필름 누아르의 신비롭고 성적으로 분방하지만 결국(혹은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던 여자들이 이제 희생자 역을 거부하고 총과 칼을 드는 것은 당연한 순서일지도 모릅니다.

와이 우먼 킬?

이 작품의 크리에이터인 마크 체리는 이미 미국 ABC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의 극본으로 대중의 마음을 확실하게 사로잡은 적이 있습니다. ‘소프 오페라’와 ‘코미디’에 ‘스릴러’를 끼얹은 이 작품 이후 비슷한 부류의 작품이 국내에서도 한동안 성행하기도 했고요. <와이 우먼 킬>은 <위기의 주부들>의 배경에 더 진보한 캐릭터들을 던져 넣고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본 결과물 같습니다. 가정주부가 허울뿐인 가정이 아닌 자기 존엄을 지키기로 결심할 때, 타인의 관심과 시선에 묶여 있던 여자가 그 결박을 벗어 던질 때, 위험한 상황에 휩쓸린 여자가 돌파구를 찾으려 할 때, 극 중 말마따나 “죽음이 이혼보다 싸게 먹혀서”일 수도 있지만, 모든 선택지 중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거죠. 죽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수많은 통계가 잘 보여주는 세상에서 여자가 살인하는 이야기는 한동안 힘을 발휘할 것 같습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조이
"칙 누아르는 아니지만 ‘여자가 사람 죽이는 이야기’에 이 작품도 빠질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