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7월자 월간 안전가옥을 통해 장편 원고의 초고가 끝났음을 보고드린 바 있습니다.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른 것과 같은 기분이니, 이제 안전한 하산만 하면 되겠다고 즐겁게 알려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봉우리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등산로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달 ‘산사’ 편에서 소개한 오대산 적멸보궁은 정말 누가 봐도 등산의 최종 목적지다운 풍경을 자랑합니다만, 사실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길은 오대산 주 등산로에서 벗어나는 갈래길에 불과합니다. 탐방로로 돌아오면 길은 더 위로 이어지고 있고, 해발 1565미터의 오대산 주봉 비로봉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한 번도 비로봉까지는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제 등산은 적멸보궁에서 끝날 줄 알았거든요. 아니었습니다.
2.
아주 오랜 기간, 언젠가는 내 글을 쓰리라고 다짐하고, 설정 덕후로 시작해 갖은 습작과 조각 단편을 여기저기에 남기다가, 첫 장편소설로 기획하고 써낸 것이 이공계 청소년소설 ‘이진수에게는 어려운 문제’ 였습니다. 당시 라이트노벨 공모전에 응모했다가 낙선한 후 동인 판매전에 자비출판을 했기 때문에,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써 낸 소설을 내 책임 하에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너머의 일을 한다는 것은, 제가 소설을 쓰면서 처음 겪어 보는 일입니다. 한 번에 40만자가 넘는 초고를 구축해 올린 것도 처음이거니와, 지금 그 중 절반이 살짝 못 되는 구간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비로봉까지 올라가지 못한 제가 드디어 비로봉에를 올라가려는 모양입니다.
장편 원고의 기획 착수로부터 1년 반 이상이 지났습니다. 지구력은 한계까지 스로틀 업 되어 있습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다리는 후들거리고, 땀은 비오듯 쏟아지며 목이 마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발걸음을 멈추었다가는 다시 일어서고 싶지 않으리라는 두려움에,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3.
하지만 지금은 저 혼자의 힘만으로 산길을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 동인소설을 혼자 작업할 때와는 주변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안전가옥과 함께하며, 기획과 마케팅의 서포트를 받으며, 건강한 동료 작가 여러분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도 올라가보지 못한 봉우리가 아득하지만, 다 올라가고 나면 한 번도 못 본 경치를 보게 되겠지요.
사회적 거리두기 속 차가운 겨울입니다. 겨울 산행은 함부로 멈추어 설 수 없지요.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꾸준히 걸어 나가 보겠습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시아란
"수정고 작업에 매우 지쳐, 이달에는 짤막하게 보내드리는 시아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