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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의 트런치불 교장

분류
운영멤버
기획PD
작성자
2020년 8월 월간 안전가옥, 운영멤버들은 "빌런인데.. 살다보면 가끔 생각나는 빌런"이라는 주제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현실의 누구를 보면 너무 닮아서, 빌런이지만 이 시대에는 '사이다'가 되어 줄 것 같아서, 실제로 있을 것만 같아서, 그냥 너무 무섭고 싫어서, 아니면 나를 닮아서(?) 생각나는 그 빌런에 대해 적어봤습니다. *대상 콘텐츠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레미의 빌런

<마틸다>의 트런치불 교장 소설

나를 죽여라

빌런.
이미 지난 월간 안전가옥에서 내 꿈에 자주 등장하는 빌런에 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ㅇㄱㅇㅈㄱㅇ지면에서만 밝히자면 …..)
내 꿈에 자주 등장하는 빌런 중 내가 이름을 말해도 아무도 다치지 않는 그 인물은 내게 영어를 가르쳐 준 선생님이다. 그 사람은 다정다감한 성격에 발음도 멋져서 내가 영어로 말하면 멋있어 보이겠다는 환상에 확신을 더해준 이다. (성별은 그래도 밝히지 말자. 신비로움을 위해) 난 이 사람과 참 많은 대화를 나눴더랬다. 문법도 배우고, 좋은 책도 함께 읽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내 이야기를 믿지 않고 타인들의 소문을 믿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나를 음해하는 이야기를 퍼뜨려 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이가 되어 버렸다. 이런 인물들…. 이야기 속에 얼마나 많이 등장하던가. 여기까지만 보면 내 최초의 빌런은 로알드 달의 <마틸다> 책에 나오는 교장 선생님이다. 좋은 코치가 제자를 훌륭하게 이끄는 스포츠 만화 같은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잘못된 스승, 어른’이 어린이를 망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 속 빌런이 가장 싫다. 난 늘 인복이 있는 편이라 자부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무너뜨린 이들은 다 <마틸다>에 등장하는 교장 같았더랬다. 발음도 이상하고 콧소리가 나는 자격지심의 인물들은 실제 내 삶에도 픽션에서도 호감을 얻지 못했다.
내게 빌런이란, 곧 나쁜 어른 혹은 스승으로 짐작했다면 오산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 인생 최대 빌런은 ‘나 자신’ 이다. 선생을 탓하기 전에 영어로 말하면 멋있어 보일 거라는 환상을 품은 건 나였다. 더 나은 나를 향한 열망으로 많은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나, 그것은 정말 수많은 현대인들이 영원히 극복하기 힘든 허상일 것이다. (모든 문제의 뿌리를 개인, 나 자신으로 여기는 것 또한 신자유주의의 음모일수도 있겠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심도 있게 얘기하자!)
최근에 즐겁게 보았던 <나 혼자만 레벨업> , <마인드 풀 러닝_케냐 이텐에서 찾은 나를 위한 달리기> , <마이클 조던 다큐멘터리 : 라스트 댄스>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등장 인물들이 무엇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이들은 모두 치열한 편이었고, 지쳤고, 한 때 삶의 좌표를 잃을 만큼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지만, 미래의 행복 이미지보다는 현재의 승부에 몰두하는 타입들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자의든 타의든 고독하게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듯,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욕망에 투명해지고 욕망을 위한 목표 설정 조절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욕망을 없애고 산다는 건, 적당히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큰 노력을 수반할 것이기에.
나는 자꾸 식단 조절에 실패하면서 무엇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내가 설정한 목표,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내가 사는 집 등 내가 레벨업하고 싶은 그 모든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 그대로의 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매 시공간에서 나를 죽일 수 있다면 조금은 행복하지 않을까. 내가 사용하는 다이어트 앱에서 말하길, 인간은 과거와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깨어있는 모든 시간의 47%라고 한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생생하게 살아 숨 쉬려면, 나를 죽여야 한다. 허튼 생각하는 ‘나’를 죽여라. 불후의 명저 <싯다르타> 에서도 많은 빌런이 등장하겠으나 ‘나’ 스스로가 깨달음을 얻기는 얼마나 힘겨운지 알려준다.
그래서 번뇌를 잊고 움직이라고 108배를 하는 것일까. 나.를. 죽.여.라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레미
"생각? 생각! 내가 만드는 허상을 다 없애고픈 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