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학에는 영 흥미가 없었다. SF 소설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재미있는 이야기로 소비했을 뿐 그 안에 숨은 과학 지식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과학보다는 오히려 수학을 더 좋아했을 정도다. 물론 수학에 대한 내 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나긴 했지만.
중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어느 날 과학 선생님이 세상에 빛보다 빠른 건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난 그런가보다 싶었다. 선생님의 말씀이니 믿을만 했고, 어릴 때 읽었던 백과사전에도 같은 내용이 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이 됐고, 취직을 해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 카페나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후 독자의 반응 보는 걸 즐기던 시절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몇 년이 내 소설 쓰기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때였다. 아무 부담없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썼으니까.
아무튼, 그 당시에도 나는 호러를 주로 썼지만 가끔은 외계인이 등장하거나 UFO를 목격하거나 하는 겉만 SF인 소설도 썼다. 그러던 차에 문득 히어로가 등장하는 단편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 생각은 구체적인 아이디어로까지 발전을 했다. 우연히 초능력을 얻게 된 주인공이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 지금에서야 뻔한 설정에 유치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문제는 주인공에게 어떤 초능력을 줄까 하는 것이었다. 염력, 사이코메트리, 투명인간 등 초능력의 종류는 아주 많았는데 나는 그중에서 ‘순간 이동’을 골랐다.
분명 드래곤 볼의 영향을 받은 설정이었지만 나는 차별점을 줘서 잘 풀어낼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작업에 착수했다.
그때 떠올린 질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데 그러면 순간 이동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랬다. 나는 순간 이동을 과학적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초능력이기는 하지만 과학적으로 말이 되게 설명하고 싶었다. 과학과는 담을 쌓았던 내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치기어린 도전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검색을 거듭하고 여러 책도 찾아보면서 실마리를 얻으려 애썼다.
그랬던 어느 토요일 아침,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꿈을 꾼 건 분명히 아니었다. 어머니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것과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채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였다. 나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아픈데 널 찾는다.”
아버지는 짧게 한 마디를 하셨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전화를 끊은 뒤 그 길로 서울역에 달려갔다. 그러고는 부산으로 가는 제일 빠른 기차에 몸을 실었다. 제발 어머니가 괜찮으시기를 마음 속으로 빌면서.
병원에 도착하고 보니 어머니는 걱정했던 것보다 상태가 좋으셨다. 어머니는 왜 부산까지 내려왔느냐고 타박을 하셨지만 그 말을 하는 내내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신기해 하며 본인도 딱 그 시각에 내 생각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실로 엄청난 우연이었다. 아니면 초능력일지도…….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빛보다 빠른 게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야말로 빛보다 빠를지도 모르겠다고.
그리하여 내 소설 속 주인공은 다른 사람을 마음 속에 떠올릴 때 그곳으로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설정을 가지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사실은 그 단편소설은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 오래된 파일을 클릭해서 나머지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나는 지금도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면 빛보다 빠르게 도착한다. 그들의 마음 속으로.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전건우
"<살롱 드 홈즈>가 프랑스에서 출간 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