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장마로 고생인 여름의 한 중간이네요. 정신이 없었던 올해, 저는 계절의 속도를 도통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계절의 정취가 가득한 영화나 책을 읽으며 위안을 삼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는 넷플릭스에서 '봄날은 간다'를 발견했습니다. 아직 보지 못했다는 언니의 제안으로 아주 오랜만에 보게 되었죠.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21살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강력한 드라마 오타쿠였던 저는 좋아하는 영화가 많지 않았어요. '그냥 과제를 하기 위해' '그래도 전공자니까 남들보다는 많이 봐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많이 봤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로맨스 영화를 좀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세렌디피티'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도 좋아했고 한국영화로는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도 좋아했어요.
그때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들은 또래보다는 확실히 어른이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특히 '봄날은 간다'의 은수와 상우를 보면서 어른의 연애란 저런 거구나. 저렇게 만나고 저렇게 헤어지는구나. 동경의 눈으로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몇 번을 돌려봤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한동안은 보지 않았어요. 다른 장르에 대한 흥미가 생기면서 그동안 놓쳤던 다른 명작들을 찾아보느라 정신없기도 했고 무수히 쏟아지는 새로 나오는 것들에 정신이 팔려 있었죠.
그렇게 근 8년만에 잊고 살았던 상우씨를 코로나가 만연한 지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은수씨. 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 조심해."
이런. 상우씨... 한없이 멋있기만 했던 상우씨가 더 이상 멋있지 않았어요. 너무하다고 생각했던 은수도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더라고요. "라면 먹을래요?"라는 대사에 소리를 지르던 저였는데 어째서인지 이번엔 "은수씨. 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 조심해."라는 대사에 더 감정이 휘몰아쳤습니다. 마지막에 쭈뼛쭈뼛 상우의 앞에 서있던 은수의 모습도 너무 마음에 걸려 안타까움에 '아...' 탄성이 나왔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스러운 순간들보다는 상우의 성격과 은수의 성격, 그리고 그들의 환경에서 나오는 대사가 좀 더 몰입이 되었던 것 같아요.
물론 여전히 상우씨와 은수씨가 좋았습니다. 이제는 동경하기보다는 너무 이해가 된다는 마음입니다. 앞으로 10년이 지난 후에 또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살아가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입장에서 똑같은 영화를 보게 된다면 사실 우리는 한 명의 관객이 아니라 여러 명의 관객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다른 의미로든 같은 의미로든 좋다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저도 만들고 싶네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김효인
"상우씨. 이제 멋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