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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헤븐] Epilogue(스포일러 주의)

작성자
류연웅
분류
파트너멤버
제가 싫어하던 두 개가 ‘가족 소설’과 ‘따듯한 소설’입니다.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에 다님으로서 생겨버린 취향이에요. ‘따듯한 가족 소설’ 써야 상 받는다는 얘기를 지긋지긋하게 들어왔거든요. 이런 말을 하는 제가 쓴
[카라마조프 헤븐]은 따듯한 가족소설입니다. 어…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제겐 그렇습니다. 원래는
‘경제 코미디 소설’이었어요. 장미도, 아이도 없었습니다. 얼떨결에 카라마조프 라이프 1호 손님의 영광을 차지한 의상이 그 자리를 탐내는 다른 인간들에게 맞서는 내용이었죠. 그렇게 완성해 놓고 띵가띵가 놀던 와중에
‘환원(Devotion)’이라는 게임을 했는데요, 슬프게 충격적이었습니다. 게임의 줄거리는 간단해요. 사이비 종교에 현혹된 아빠가 딸을 죽게 만든다. 아빠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친정에 다녀온 아내가 “아이는 어디 갔어?”라고 묻는 순간, 제정신이 돌아온다. 그제야 과오를 뉘우치지만 이미 늦어버린 뒤다. 만약 그 게임이
엄마의 시점에서 진행됐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며 ‘장미’라는 인물을 만들었고, ‘카라마조프 헤븐’은 따듯한 가족소설이 됐습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미스터리인 줄 알았는데, 따듯한 가족소설인 이야기요(과연 제가 의도한 대로 읽혔을 지!). 제 나름대로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써본 가족소설이거든요. 앞으로도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많습니다. 공포소설, 하우스미스테리소설(‘호텔 더스크의 비밀’ 같은 이야기 만들고 싶어요), 영어덜트 느와르, 스파이소설(뉴욕 삼부작 같은 이야기! 인천 삼부작으로). 아무튼
이렇게 또 하나가 끝났고, 책이 나오니 기분이 좋아요! [카라마조프 헤븐]. 아래에 제가 소설을 쓰면서 숨겨두었던 디테일들을 적어두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
1. 이야기
’이야기의 시작’, ‘이야기의 중간’, ‘이야기의 끝’만 따로 읽어보면, 좌절하고 있는 의상에게 아이가 응원을 건네는 장면이 만들어집니다.
어쩌면 [카라마조프 헤븐]은 그 한 장면이 전부일지 몰라요. ‘카라마조프’는 도시가 꾸던 악몽이고(82p), 거기서 깨어난 의상에게는 아직 ‘삶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88p)’가 있는 것일지도.
p.s. 이 디테일은 이혜정 편집자님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장미
장미의 꽃말은 열렬한 사랑입니다. 열렬해서 어긋난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3. 존댓말
아이는 병원에 다녀온 이후부터 장미에게 존댓말을 하기 시작해요. 둘의 멀어진 사이를 표현하기 위한 사소한 장치입니다.
4. 편의상
장미와 달리, 의상에겐 이름을 주지 않았어요. 편의상 ‘편의상’으로 부르기로 했을 뿐이죠.
제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각기 다른 이름을 갖고 계신 독자분들이 모두 의상에게 본인을 투영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이건 1번과 이어지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소설의 끝자락에서, 그리하여 ‘이 감정을 느낀 의상(독자)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제가 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고요.
5. 채팅 대사
특정한 대사들이 채팅의 형태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읽어보시면, 모두 영혼 없는 대화들이에요. 사회 생활의 대화라고 할까요.
그에 반해 큰 따옴표 처리된 대사들은 진심이 가득합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마지막 대사는 큰 따옴표 처리가 됐습니다.
6. 카라마조프
‘작가의 말’에도 적혀 있지만, 원래는 ‘카카오 헤븐’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카카오’가 불쾌해 하실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아무래도 작중에서 과도한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다뤄지다 보니). 그래서 shin과 함께 카카오를 대체할 것을 고민했고, 카라마조프가 탄생했습니다.
친구는 “카라마조프라는 이름도 의도적인 거지?”라고 묻더군요. 물론 맞다고 했습니다만… 사실 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안 읽어봤습니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까 ’카라마조프’가 이기적이고 종교적으로 부패한 가문이라더군요. 오… 이런 걸 전문 용어로 ‘아다리가 맞다’고 합니다.
7.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
카라마조프 경영진들의 얼굴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4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표지에 실린 도스토옙스키의 말년 초상화처럼 야위어 갔다.
8. 제 친구들이 제일 좋아하는 문장!
이승만라이프 불매 해야된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류연웅
“이제까지 빨간 책(미세먼지 앤솔로지), 파란색 책(편의점 앤솔로지)을 내봤네요. (아마도) 세 번째 책이 될 듯한 [못 배운 세계]는 무슨 색일 지 벌써부터 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