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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과 찹쌀떡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범유진
이번 장편을 쓰면서 주의한 것이 있었다. 악당에게 멋진 서사를 부여하지 말 것. 최대한 그들의 서사를 줄일 것.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도는 했다.
매력적인 악당은 분명 서사를 이끌어 가는데 도움이 된다. 악당이 ‘매력적’ 이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듯 한데 이야기 속에서는 그게 된다. 현실에서는 악당 쪽에 이입했다가는 질타를 받을 테니깐. 그럼에도 사람들은 분명 악에 끌린다. 악당을 슬며시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 안에는 ‘언젠가 나도 악당이 될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하는 심리가 슬며시 깔려있는 건 아닌가도 싶다. 그렇기에 역으로 이야기 속 악의 존재는 분명 정화 기능이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이 이야기 속 존재를 굳이 현실로 끌어오는 순간 일어난다. 진짜 범죄자에게 온갖 서사를 갖다 붙여 굳이 ‘악당 캐릭터’로 만들려는 순간. 범죄자가 모범생이었음을 강조하는 기사를 쓰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효과를 바라는 걸까. 한순간 타락한 선량한 학생의 드라마틱함? 지킬과 하이드의 양면성? 어느 쪽이든 아니다. 그들은 그저, 찌질한 범죄자의 이야기를 잘 포장해 클릭수를 늘리고 싶을 뿐일 것이다. 그들은 무너뜨리기만 하고, 책임지지 않는다.
…하는 생각을 얼마간, 뉴스를 볼 때마다 했다. 할 수 밖에 없는 기사를 온갖 매체에서 쏟아냈으니깐. 뇌에 과부하가 걸린 시점이라 저기서 모든 생각이 스톱되었지만. 다음에는 악당 없는 장편을 써보고 싶어졌다. 아니면 꽁치를 독차지하기 위해 세계정복을 꿈꾸는 고양이…. 그런 고양이 이야기라던가. 하지만 확신할 순 없겠다 싶다. (아니. 사실은 그냥 내가 입체적인 인물을 잘 쓰게 되면 해결될 고민이기도 했다. 파이팅.)
이 글을 쓰다 보니 떠오른 것 한 가지.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과부하 걸렸다는 말 좀 그만하라고. 그런 말을 자주 할수록 사람들에게 너는 ‘그런 사람’ 으로만 인식되게 된다고. 그렇지만 이번에도 써버렸고…. 자주 걸리는 만큼 해소도 빠른데…. 하는 변명을 웅얼거리다가 나만큼 자주 터지는 사람을 위한 팁을 공유하기로 했다.
일단 커다란 찹쌀떡을 상상한다. 속이 팥으로 꽉 찬. 찹쌀떡을 반으로 자르고, 팥의 일부분을 삽으로 잘 퍼낸다. 그곳에 들어가 눕는다. 그리고 잘라낸 반을, 철썩 붙인다. 현실적으로야 불가능하겠지만 상상이니깐. 그렇게 하면 달콤하고 따뜻하고 말랑한 찹쌀떡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찹쌀떡이라니 멋지다. 그건 그냥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맛있어 보이고, 새하얀 것이 무해해 보이니깐. 팥이 싫다면 가운데에 크림이나 딸기를 넣어도 된다. 찹쌀떡이 싫다면 케이크도 좋을 것이다. 딱히 디저트 류가 아니라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뭐든 괜찮지만, 개인적으로는 디저트가 좋다. 너무 쓴 맛만 가득하니깐. 달콤한 무언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악당들도 달콤한 걸 좋아할까. 엄청난 슈퍼파워 찹쌀떡이 나타나서, 그 안에 악당들을 몽땅 빨아들이는 소설을 쓰고 싶다. 흡수된 악당들은 팥소가 될 텐데, 그 맛도 달콤할까.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범유진
"찹쌀떡과 아이스크림이 합쳐진 찹쌀아이스는 위대한 발명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