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지는 문창과 6년(예술고등학교 3년 + 대학교 3년) 다닌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비판을 인정하면 쿨찐 같을 것 같고, 괜찮은 척하면 억텐 같을 것 같고, 내가 무표정 하면 갑분싸가 될 테니까요.
2020년 상반기에도 많은 합평을 받았고(학교를 다녔기에), 그 외에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피드백을 받을 상황이 더러 있었습니다. 서울예대 친구들과 뮤지컬을 만들었고, 한국화 전공 친구와 그림책을 만들었으며, 개인적으로 썼던 작품들을 친구들에게 봐 달라고 부탁도 했으니까요.
제가 받은 피드백은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적어둡니다. 각 잡힌 자리에서 오간 피드백이 아니라, 식사를 하면서 간단하게 나눴던 한 마디도 (작품에 대한 얘기라면) 기억하고 있다가 포스트잇에 메모해 놓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서 제가 상반기에 받았던 피드백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1. 비판 할 대상을 정해놓고 비판을 안 한다!
목공하는 친구가 닭발 집에서 취한 상태로 해줬던 피드백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제 나름대로 제 작품은 ‘하이퍼 리얼리즘’을 표방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친구가 감명 깊게 읽었다는 [피로 사회]와 함께 제 작품을 다시 읽으니, 어떤 맥락에서 나온 피드백인지 이해가 됐습니다.
비판할 거리 포착 -> 개인의 감정(억울함 및 다툼)으로 이를 표현
위는 제가 그동안 자주 써오던 소설 구조입니다. 저는 항상 도입부에서 이분법적인 세계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리고 양쪽 다 속하고 싶지 않은 주인공(타자화)을 내세우는 소설을 주로 써왔습니다. 주인공의 ‘속하고 싶지 않은 마음’ 자체가 저는 하나의 비판 지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마 친구에게는 ‘부족한 설득력’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반기에는
비판할 거리 포착 -> 직접적인 가시화 -> 사유 지점 제공 -> 비판적 대안 설계
이런 구조의 작품에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소설보다는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으로 불리는 작품들에 주로 나타나는 구조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체르노빌]이나, 한승태 작가의 책 [고기로 태어나서]처럼요.
다만 ‘좋은 글’과 ‘좋은 소설’은 다르잖아요. 이 지점이 제일 고민입니다.
그래서 당장에 저런 구조의 작품을 완성하는 게 아닌, 연습을 해보는 걸 제 개인적인 하반기 목표로 세워봤습니다. 한 권의 ‘크리에이티브 논픽션’ 책을 읽고, 이를 요약하는 느낌의 스토리텔링을 한 달에 하나씩 써보자! 이번 달 선정 도서는
[공익광고의 은밀한 폭력]입니다. 그때, 닭발 집에서 친구들과 ‘유투브와 MBTI의 폭력성’에 대한 얘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이번 달에는 매스미디어에 대한 공부를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아카이브를 모으던 중, 정말 우연히 발견한 책입니다(도서관 책상에 널부러져 있었어요).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격한 책입니다. ‘공익광고’는 결론적으로 ‘정책 문제를 국민에게 전가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문장도 흥미롭습니다.
2. 작품에서 뭔가 더하고, 뺀다기 보다, 재배합을 하면 좋겠다.
이건 안전가옥에서 들었던…...이라기 보다, 안전가옥 멤버들과 함께 쌀국수를 먹다가 잠깐 오간 피드백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재배합’이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추상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아카이브를 모았습니다. ‘재배합’은 곧 ‘구조’와 연결되는 단어인 것 같아서 드라마들을 주로 참고했습니다.
그러던 중, [순풍산부인과]를 보고 어렴풋이 감을 잡았습니다. 특히 박영규가 도자기 깨놓고 이를 은폐하려는 에피소드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링크 남기고 싶었는데, 유투브에는 영상이 없더라고요ㅠ).
문제 제시 -> 해결 방법 제시 -> 해결된 줄 알았는데 새로운 문제 파생 -> 새로운 해결 방법 제시, 엔딩
제가 요약해본 시트콤(코미디)의 basic한 구조입니다. 어쩌면 이 구조가 더 명확하게 보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제가 그동안 [안전가옥 앤솔로지]를 통해 발표한 단편들을 돌이켜 보면, ‘문제’와 ‘해결 방법’이 산재해 있습니다(사실 이를 의도 했습니다 - 처음 읽을 때와 두 번째 읽을 때의 감상이 달라지도록 ex, [카라마조프 헤븐]의 도입부).
다만 했던 거 계속 하면 재미 없으니까, 이제는 한 번 시트콤 같은 작품에 도전해봐야겠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꼬리가 꼬리를 물고! 특히나 현재 안전가옥과 작업 중인 경장편 [근본 없는 월드클래스]를 쓸 때 말이에요.
3. 과장과 유쾌
근데 아직 두 개 얘기 했을 뿐인데 벌써 분량이 상당하군요... 그래서 슬슬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흑흑 아쉬워라.
아무튼!
제가 2020년 상반기에 받았던 수많은 피드백들을 요약하자면 ‘과장과 유쾌’입니다. 그것은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그 ‘과장과 유쾌’가 너무나도 폭력적으로 느껴졌다고 피드백 해주었고(어쩌면 이건... 그 이면을 보지 못하도록, 제가 너무 단순하게 표현했기 때문이었겠죠?!), 누군가는 제 소설의 배경을 아예 먼 미래로 옮겨보는 건 어떻겠냐는 피드백도 주셨습니다.
확실한 건, 그래도 저는 제가 가고 있는 방향성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고품격 ‘과장과 유쾌’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곧 나올 제 1집 [못 배운 세계]가 그 길을 직조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흐흐… 사실 이 홍보가 이 글의 포인트입니다).
사실 [못 배운 세계] ‘최종 교정(본문 디자인 교정)’을 끝내자마자 이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인데, 책이 나온다는 사실이 떨리면서도 기대가 되네요.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고, 웹에서 소설을 발표할 때와는 또다른 설렘입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제출했던 [클럽보다 펜싱클럽] 기획에 대한 친구의 피드백입니다. 첫 문단이 넘 웃겨서 허락을 구하고 가져와 봤습니다)
끝으로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내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로 이 글을 시작했지만… 사실 이번 학기에는 표정을 지을 일이 없었습니다. 비대면 수업으로 합평이 진행됐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더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내 합평 기록이 댓글로 남으니까요.
저는 합평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합평을 하기 전부터, 상대방이 지을 표정을 걱정합니다. 물론 그건 과거, 폭력적인 합평들을 보며 느꼈던 분노에서 기인하는 감정입니다. 창작에 대한 공포심만 심어주던 합평들. 그렇게 쓰면 상 못 받는다는 얘기들.
창작에서 제일 중요한 건 창작자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합평을 더 잘 하고 싶습니다. ‘친구의 창작’에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친구들로부터 너무나 고마운 동기부여들을 많이 받고 있기에, 어쩌면 이건 그저 돌려주고 싶은 마음일 지도요. 갑자기 분위기 훈훈. 친구들아 언제나 고마워.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류연웅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뭐든 이뤄집니다. 지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보세요. 최근 3경기 모두 3점차 이상 승리입니다. 후… 진짜 8년 기다렸다. 믿었어요, 황유. 고마워요, 브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