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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의 깊은 디지털 미로 어딘가에

작성자
심너울
분류
파트너멤버
월간 안전가옥을 쓰긴 써야 하는데 오늘은 정말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뮬란’ 실사판에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어 그 이야기나 할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는 2개월 연속으로 블리자드를 비난하면서 내 취향을 말했다는걸 깨달았다. 코로나와 정치 이야기는 이미 너무나 사회를 피로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딱히 아는 것도 없는 내가 말을 얹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쓰다가 치워둔 소설 몇 개들을 간략히 말하고자 한다. 이 슬픈 아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의 깊은 디지털 미로 속에 잠들어 있다. 비록 원고료로 화하지는 못한 친구들이지만, 월간 안전가옥 에세이로 화하여 내 마감을 하나 지킬 수 있으니 그들로서도 기쁠 것이다, 아마도.
(가제)냉면 붐은 온다
‘나’는 생물학과 3학년 학생인데, 약학전문대학원 입시를 실패하여 망가진 자존감을 어떻게든 회복하기 위해 이성과 합리라는 가치에 지나치게 매달린다. 물론 우리는 틈만 나면 이성이란 단어를 들이대는 사람들 치고 진짜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던 중에 ‘나’는 정말로 아름답고 마음에 쏙 드는 장신구를 보게 되는데… 이 장신구가 ‘원적외선을 내뿜는 마그네슘으로 되어 있어 건강에 좋다’는 딱지를 달고 팔리고 있는 것이다.
안전가옥의 ‘냉면’ 스토리 공모전에 내려고 준비했던 소설이다. 그런데 냉면 이야기는 어딨냐고? 모르겠다. 그래서 때려친 것 아닐까? 이 1만자짜리 원고가 세상의 빛을 볼 날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완벽한 심리 검사
인간과 극히 유사한 외관을 가졌으나 인공지능 발전은 현대와 별다르지 않은 로봇이 생산되는 근미래, 각각 심리학과 로봇공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현우’와 ‘예슬’은 힘을 합쳐 여러 공모전 상금을 사냥하고 다니는 친구다. 둘은 한 심리측정 회사의 커다란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예슬은 사람과 닮은 로봇을 이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훌륭하게 측정하는 검사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여러 문항을 주고 그 답으로 점수를 매겨 한 사람을 어떤 범주에 넣는 보통의 방식은 왜곡이 너무 쉽다는 것이다. 예슬의 생각은, 사람과 상당히 비슷한 로봇들로 어떤 일상 생활의 장면을 구현한 다음, 그 장면 속에 사람을 집어넣고 자극에 따라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기록하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둘은 이 아이템으로 공모전에 나가지만 생각지도 못한 실패에 직면한다.
이 소설은 원래는 내가 MBTI에 대한 불만이 있어서 썼는데, 알고 보니 내가 심리 검사 및 측정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글쎄, 대학원 마치고 나면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의식의 근원
정신분석학자인 ‘나’는 잠들 때마다 인간이 아닌 컴퓨터가 되는 꿈을 꾼다. 나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자신이 전혀 모르는 전산 분야에서 갑자기 무시무시한 능력이 생기게 되어 점점 의구심을 갖는다. 나는 그 이후로 꿈을 기록하기 시작하고, 꿈 속의 자신이 G모사의 슈퍼컴퓨터라는 것을 깨닫는다. 꿈을 꾸는 나는 현실의 나에게 G모사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다시 깨어난 나는 그 권한과 슈퍼컴퓨터의 능력을 이용하여 G모사의 데이터 센터로 잠입한다. 거기서 나는 꿈꿀 때마다 자신이 변하는 슈퍼컴퓨터와 맞닥뜨린다. 그 슈퍼컴퓨터는 강력한 정보 처리 기능을 가지게 되면서 점차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반도체들 속에서 자리잡지 못한 그 의식이 나의 신체를 빌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는다.
이 내용은 내가 머릿속으로 굴릴 때는 여전히 정말로 재미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글로 어렵고 복잡하지 않게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다. 내 능력의 한계다.
이 밖에도 원고지 1천 매 가량의, 중간에 쓰다 만 글들이 있다. 아마 이렇게 클라우드 깊은 곳에 쑤셔넣은 소설들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고 디지털 망령으로 화할 것이다. 소설을 쓰게 만드는 동기가 되는 강렬한 착상의 즐거움도 사라진지 오래고, 지금 보면 너무 어설퍼서 딱히 더 쓰고 싶지도 않고… 전부 팔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 몇 개월 뒤에 월간 안전가옥에 쓰면 되겠네! 나의 영리함에 감탄할 뿐이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심너울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이 소설들을 돈 주고 살 관심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