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의 요구는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는 개정안을 입법예고로 돌아왔다. 14주 이전의 낙태는 ‘허용’한다는 말이다. 2017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성의 콘돔 사용률은 10년 동안 3분의 1로 줄어들었고(한국일보 17.09.29), 배 속의 아이를 죽게 만든 남자에게는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태어난 아이를 양육할 의지가 없는 남성은 낙태를 종용하지만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내 몸이 분리되는 기분을 느낀다. 이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말 그대로 분리이다. 내 몸이 조각조각 떨어져 단상 위에 올라간, 스테인리스의 차가운 표면이 살 곳곳을 얼리는 기분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내 친구들은 이 추상적인 설명에도 어떤 말인지 알아듣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말하자, 내 동성 친구들은 이 말을 알아듣는다.
내가 처음 이 기분을 느낀 것은 2016년, 행정자치부가 전국 가임기 여성 인구수를 표기한 지도를 내걸었을 때이다. 선홍색으로 표시된 지도 속에서 나는, 결혼과 출산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나는 임신이 가능한 여성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언제든 임신할 수 있는 몸’으로 나를 규정해둔 적 없다. 몸은 임신이 가능할 지라도 내 의지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현재 내 몸은 임신이 불가능한 상태의 몸이다. 그 기사를 마주했던 당시, 나는 지하철에 있었다. 그 기사를 보기 전에는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에 관한 글을 읽고 있었고 지하철 광고판에는 성형외과 광고가 붙어 있었으며 내 앞에 있는 임산부 배려석에는 아저씨가 다리를 벌린 채 앉아 있었다. 그때 내 안에서 무언가가 울컥, 하고 움직였는데 울음은 아니었다. 텅 비어있는 것. 허무하고 허망한 것.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권리가, 나에게 없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 내 안에 자리 잡은 배신감이었다.
나를 대신하는 당신은 누구일까. 나는 한 번도 준 적 없는 내 권리를 강제로 빼앗아가, 내게 의무가 있다고 외치는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천선란
"욕을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