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도 모자라 이제 샴푸향으로까지 연금을 받게 됐다는 그 분의 노래들처럼. 산에 들에 피는 꽃만 보면, 코 끝을 스치는 봄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바로 그 장면, 그 이야기.
2021년 3월 월간 안전가옥의 주제는 '봄에 생각나는 그 콘텐츠' 입니다.
봄, 하면 아무래도 벚꽃, 벚꽃 하면 아무래도...
.. 다음에 뭔가 그럴싸한 (쇼윈도용) 콘텐츠를 이야기하려고 했거든요. 공개채널에 올라가도 오 그런.. 할 수 있는 그런 콘텐츠. 아 근데 벚꽃 씬을 떠올리려 하니까 무언가 하나가 머릿속에 확 박혀버려서는 도무지 다른 걸로 잘 덮이지가 않네요. 틈틈이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럴싸한 벚꽃 씬을 떠올려보려고도 하고, 책 영화 만화 뭐 등등을 기억 속에서 뒤져보고 했는데 결국 - 이 씬을 이길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한때 ‘원나블’이라는 약칭으로 <원피스>, <나루토>와 함께 소년만화 3대장을 이루던 <블리치>의 한 장면입니다. 쿠치키 뱌쿠야(바쿠야 아님)에요. 주인공의 세미 라이벌 역할을 하다가 언젠가부턴 츤츤 동료가 되어서는 츤데레에 냉혈한에.. 솔직히 (켄파치나 토시로에 비해) 막 그리 세지도 않으면서, 근데 또 막 싸우는 씬 자체는 임팩트가 너무 대단해서 그 전투씬을 보고 나면 뱌쿠야 기억만 남는 그런 캐릭터.
음.. 일본의 소년만화를 보면 항상 그런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그 등장 때에는 대적자 역할이었고, 한바탕 한 담에 어찌어찌 주인공 편에 서긴 하지만 끝내 완전히 동조한다고 보기는 또 어려운, 주인공한테 지긴 했으니까 주인공보다 약한거 같긴 한데 나중에싸우는거 보면 아 진짜 약한거 맞나.. 언제 저렇게 세졌지 하는 그런. 그런 애들은 또 맨날 앞에서는 차가워요. 냉정하고, 잇속 챙기고. 하지만 알고보니 막 뒤로 도와주고 막 그래.
태초에 베지터가 있었습니다. 서태웅도 있었죠. 타이의 옆에는 포프만 있는게 아니라 흉켈도 있었어요. 아돌을 마스터한 사이토는 켄신도 막기 어려울 겁니다. 정상해전에서 코로커다일이 보여준 임팩트에 반해버린 사람이 저뿐만은 아니겠죠. 호리병 등에 메고 팔짱끼고 싸우는 카제카게 가아라의 무심한 표정은 또 어떻구요. <블리치>의 뱌쿠야 역시 딱 그런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그런 캐릭터가 그렇듯이 아주 섹시해요.
<블리치>는 왕도물의 서사를 따르는 이능력 배틀물인데요, 주인공 일행의 이능력은 사무라이 검에서 나옵니다. (마치 해리포터의 지팡이처럼)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검이 있고, 그 검에는 일종의 유사 인격과 고유한 특수능력이 탑재되어있죠. 그리고.. 좀 오글거리지만.. 주인이 검의 이름을 부르며 언령을 내리면, 그 검의 진정한 모습이 개방되어 그 특수능력을 발현합니다. (아 이거 만화로 볼 땐 안그랬는데 왜 이렇게 쓰니깐 왜 좀 그렇죠)
저 언령을 받은 검은 벚꽃처럼 잘게 쪼개집니다. 그리고 각 조각은 벚꽃이 흩날리듯 바람을 타고 나는데, 그게 뱌쿠야가 조종하는 대로 날아요. 뱌쿠야가 이걸 조종하는 액션도 크지 않습니다. 가아라가 모래를 다루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에요. 머플러 두른 존잘 냉미남이 손만 까딱 하면 무수한 칼날의 무리가 슈아아 하고 날아가는 그런 느낌. 간지 인플레이션이 진작 시작된 <블리치>지만, 뱌쿠야의 간지는 독보적입니다.
이글을 쓰는 지금은 벚꽃이 한창입니다. 특히 지난 주말엔 만발하는 벚꽃 아래를 걷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회사 근처의 서울숲도 동네 뒷산도 말이죠. 그 아래를 걷다가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벚꽃 비가 내리는데, 그럴때면 (아 솔직히 그러고 싶지 않은데) 반사적으로 속으로 자꾸 외치게 된단 말이죠. 흩날려라, 천본앵.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뤽
"근데 이거 자꾸 만화/애니 얘기만 하는 것 같아서 (그럴 필요 없단걸 알지만서도) 좀 민망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