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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구이와 소고기 장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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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니까 갑자기 더덕구이가 먹고 싶어졌다. 더덕구이는 살아생전 할머니께서 어쩌다 가끔 해주시는 음식이었다. 더덕구이를 할 때는 한우 사태를 한 덩이 사와서 장조림을 함께 하셨는데 두 가지 다 재료가 비싸고 손이 많이가서 당신 드시고 싶을 때만, 아주 적은 양만 만드셨다. 달고 쌉싸름한 더덕구이에 차갑고 쫄깃한 소고기 장조림을 흰 쌀밥에 살짝 얹어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대신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부모님과의 애착 관계보다는 할머니와의 애착 관계가 훨씬 컸다. 할머니는 항상 지병이 있었고 연세도 많으셔서 평생 함께 할 수 없다는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막연하게 성인이 될 때까지는 할머니가 살아계실 줄 알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상상할 수 없는 나이였으니까. 할머니는 내가 16살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벌써 십년이 넘었다. 아직은 할머니와 함께한 세월이 더 길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머니가 보고싶다거나 하지는 않다. 할머니가 있었던 삶이 나에게는 너무 먼 얘기가 되어버렸다. 할머니와의 좋았던 기억보다도 병마와 싸우시던 마지막 모습이 더 선명해서 그저 당신 믿으시던 하나님 곁에서 아픔 없이 평안하길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더덕구이의 맛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맛에 대한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남는구나 싶다. 마지막으로 더덕구이를 먹어본게 6년 전이다. 카메라 보조 알바를 나갔다가 맛집 촬영을 끝내고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회식을 했다. 논현동인지 청담동인지, 어쨌든 강남에 있는 장어구이집이였는데 사이드로 더덕구이를 팔고 있었다. 당시 나는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입 안이 구내염으로 전부 헐어 있던 상태였다. 그렇다고 해서 눈 앞에 장어구이와 더덕구이를 안 먹을 수는 없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내가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고통을 참아내고 먹긴 먹었는데 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가 해주셨던 그 맛이 아니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아마 평생 다시는 먹어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평소에 먹는 라면과 해수욕장에서 실컷 놀다가 먹은 라면의 맛이 다른 것처럼. 할머니의 더덕구이가 아닌 이상 그 맛을 똑같이 느낄 수는 없겠지. 왜 사람들이 추억이 담긴 음식을 맛 보고 눈물을 흘리는지 알 것 같다. 기억은 감각에 저장되어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맛보다도 뚜렷하게 뇌리에 박혀있는 기억도 있다. 억하심정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내게는 세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는데 둘째까지는 할머니가 돌봐줄 수가 없어 어머니가 일을 잠깐 관두고 육아를 하셨다. 동생이 어느정도 자라고나서 어머니는 다시 일을 시작하셨고 할머니가 우리를 돌봐주셨다. 하지만 지독하게 옛날 사람이신 할머니가 장녀도 아닌, 게다가 자기 손으로 보지도 않은 차녀에게 애착이 있을리가 만무했다. 할머니는 나와 동생을 대놓고 차별했고 어린 나는 그게 또 당연하다고 여겼다. 동생에게는 엄마가 있으니까 할머니의 사랑은 내것이여야 했다.
어린 나는 우리의 식사를 챙겨주던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할머니였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최근 갑자기 더덕구이가 먹고 싶다는 말을 내뱉는 적이 있었는데 동생이 자기는 한 번도 더덕구이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더덕구이를 단 한 점도 동생에게 주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집에 있는 동생도 먹었을거라 생각했다. 더덕구이와 소고기 장조림은 손이 많이가고 비싼만큼 정말로 당신과 나만이 즐겨 먹던 요리였다.
미안한 마음에 동생에게는 나중에 내가 강남에서 장어구이와 더덕구이를 사주겠다고 했다. 그때 그집이 아직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맛이 그 맛이 아니라는 걸 동생도 알고 있을 거다. 먹을 걸로 차별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다 커서야 겨우 먹어본 더덕구이의 맛보다 더 오랜 시간 동생의 기억에 남아있을거다. 억하심정이라는건 그런거였다.
동생은 농담처럼 할머니가 차별했던 일을 얘기한다. 그럼 나는 할머니 무덤 앞에 가서 따지라고 말하지만 그게 농담이 아니라는건 잘 알고 있다. 동생은 성묘를 가지 않는다. 내가 할머니를 그리워하더라도 보고 싶어하지는 않는 이유와 같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최수진
"더덕구이 잘 하는 집 추천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