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월간 안전가옥, 운영멤버들은 "다시 태어난다면 이 캐릭터로"라는 주제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나는 못하는 말을 하는 '사이다캐'라서, 돈이 많아 보여서, 행복해 보여서, 초능력이 있어서, 천재라서 등등.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혹은 남은 여생을 바꿀 수 있다면, 이 사람 혹은 이것(?)으로 살고 싶은 그 캐릭터에 대해 적어봤습니다.
*대상 콘텐츠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뤽은 다음 생에
<엑스맨 시리즈>의 로건
영화
"그거 뚫고 나올 때, 아파?" (When they come out.. does it hurt?)
“항상” (Every time)
시간이 꽤 흘렀다는 것을,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언젠가였나 서른이 다가올 즈음 친구들이 탈모를 걱정하기 시작할 때 한 번 그랬고, 올해 들어 부쩍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은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부쩍 그 순간들을 더 자주 느낀다. 솔직히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정하자니 왠지 좀 슬픈 느낌이지만.
왕년에(?) 소처럼 일하고(?) 그 뽕에 취하고(?) 했던 시기를 같이 보낸 사람들끼리 공유하던 몇 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몇 시간이고 릴레이 미팅을 할 수 있고, 새벽이 올 때까지 자료를 읽고 만들고, 그 와중에 뒷풀이를 하고, 그래도 다음 날이면 무슨 일이 있었다는 듯 멀쩡히 출근하고. 이것을 주말 없이 반복하던 삶. 아니 반복할 수 있던 삶. 근데 그 땐 그게 특수상황인 걸 몰랐지.
또래들도 비슷하게 느끼는 듯 한데, 언젠가부터 미묘하게 균열이 생기는 것 같다. 해당 순간에 쏟아붓는 것은 어떻게든 한다 치는데, 그게 바로바로 회복이 잘 안되는 것 같은 느낌. 라떼는 말이야 어제 힘든건 어제 끝났는데.. 아 이젠 어제 힘든게 계속 힘들어. 혹은 회복하는데 좀 시간이 걸려. 잠을 좀 못잔거든, 술이 좀 과한거든, 스트레스가 심한거든 암튼 그게 무엇이든 회복이 예전만큼은 빠릿빠릿하게 되지 않는 느낌.
그렇다고 골골댄다 이건 아니고 여전히 그래도 뭐 동급 대비 괜찮은 편이라는 나름의 진단은 있지만, 확실히 정점은 지나 내려오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면 간단한 함수다. 이 추세를 외삽해보면, 오지 않을 것이라 자만했던 ‘은퇴’라는 것도 언젠가는 오겠지. ‘앞으로 몇 년이나 이렇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냐’는 질문을 꺼내리라 솔직히 생각지 않았다. 신체는 물론 지적능력이나 멘탈도, 변곡점을 지났다.
치열하고 경쟁적인 상황에 스스로를 밀어 넣어왔고, 여전히 그런 상태에 있고, 여전히 그게 즐겁다. 그런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이 그래도 나름 나쁘지 않은 회복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나도 힘들고 빡세고 다치고 아프고 열받고 한다. 그렇지 않을 리가 없지. 하지만 그 동안은 이게 그래도 그때그때 뚝딱 나아왔기 때문인가 싶다. 결국 포인트는 체력이 떨어진다 이것보단 회복력의 이슈가 아닌가.
<엑스맨 시리즈>의 울버린, 로건을 생각한다. 로건의 초’능력’은 힐링팩터다. 할퀸 상처 정돈 그 순간에 회복하고, 머리에 총탄을 맞아도 이윽고 회복해서 일어날 수 있는 능력. (아다만티움 몸체는 능력이라기보단 타의로 탑재된 일종의 장비에 가깝다) 애초에 상처를 잘 입지 않는 불사신(콜로서스가 비슷한 능력)이 아니라, 로건은 상처는 상처대로 입고 고통은 고통대로 느낀다. 그저 그걸 이겨낼 뿐인거지.
2000년 브라이언 싱어의 첫 번째 <엑스맨>, 시리즈의 주인공 격인 로건이 처음 등장해 로그와 트럭에서 나눈 대화. 로그는 로건에게 주먹 위로 클로를 꺼낼 때 아프냐고 묻고, 로건은 ‘항상' 아프다고 답한다. 그리고 2017년 <로건>에서까지 로건은 매번 아파하면서 회복해낸다. 매그니토 같은 광역기술도 없이 오로지 선두에서 주먹 좀 휘두르다 얻어터지고 버텨내면서. 그렇게 캐릭터 로건은 거의 200년을 살았다.
음. 이건 되게 변태 같은 말이지만, 로건이 만약에 저 힐링팩터를 쌈박질하는데 안쓰고 앉아서 장표그리고 일하는데 썼으면 200년이 아니라 한 1000년 살 수 있지 않을까? 몸도 머리도 금방금방 회복하면서 1000년을 풀캐파로 달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오싯 너무 쩐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뤽
"낸시 크래스의 단편SF <스페인의 거지들>에 나오는,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불면인’도 한 번 되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