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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1220회: 제주 이 변호사 살인사건>을 봤습니다

분류
운영멤버
스토리PD
작성자
헤이든
운영멤버들의 6월 월간 안전가옥은 "이번 달에 본 콘텐츠"라는 주제로 작성되었습니다. 안전가옥에서 일하는 운영멤버들은 6월 한 달 간, 어떤 영화, TV쇼, 책, 만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지 함께 살펴봐요 *대상 콘텐츠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헤이든이 본 콘텐츠

그것이 알고싶다 1220회: 나는 살인교사범이다 - 제주 이 변호사 살인사건 다큐멘터리 SBS
출처: sbs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그것이 알고 싶다>이다. 나는 매주 토요일이면 이 프로그램을 챙겨보는데, 미처 챙겨보지 못했을 땐 다시 보기를 통해서라도 본다. 이유는 내 주변에 없는 유형의 사람들이 그 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범죄자는 물론 프로파일러까지도.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살인사건의 원인은 아주 간단히 말하면 ‘내 것 혹은 내 것인 줄 알았던 것을 빼앗겼거나, 빼앗고 싶을 때’ 일어난다. 그게 사랑이든, 성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여기서 조금 복잡해지면 빼앗긴 것을 누군가를 사주해 빼앗아 오는 경우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최근 몇 년 들어 공소시효가 임박했거나 이미 지나버린 미제 사건을 다루는데, 피해자 측이 대부분 사망한 상태이기 때문에 사건의 정황을 상세히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서 사건 수사를 맡았던 형사의 인터뷰와 주변 증언, 프로파일러 등 전문가의 인터뷰, 과학수사 기법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증거들을 차근차근 보여줌으로써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지난 주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제주 이 변호사 피살사건’을 다루었다. 이 사건은 5년의 시차를 둔 두 건의 제보로부터 시작되었다. 제보자 중 한 명은 이 변호사 피살 당시 아홉 살이었던 피해자의 아들 이 모 씨고, 또 한 명의 제보자는 해외에서 은둔 중인 살인교사범이었다.
사건은 이전에 다루어 왔던 다른 사건보다 복잡하거나 달리 보이지 않았다. 사건을 축약하자면, 검사 출신의 강직한 성격의 이 모 변호사가 야밤에 가슴 한가운데인 흉골을 찔린 후 자차 속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이다.
하지만 ‘이 변호사 피살사건’ 편을 다 본 후 ‘영화 같다’는 감탄을 내뱉었던 것을 보면 여느 때와 달랐던 것은 분명한데, 무엇 하나 꼭 집어 달랐다고 말하자니 그것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나에게 작은 의문이 생겼다. 매주 보아 온 방송 프로그램이 왜 오늘만큼은 영화 같아 보였을까?
성기게 말하자면, 1) 반전이 있었다, 2) 캐릭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짚어보자면 이렇다. 이 프로그램은 피해자나 가해자의 모습을 ‘보여줄’ 뿐 일부러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서사를 그들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회식 후 만취한 채로 귀가하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에 대해 보여줄 때면 피해자의 시신 훼손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보아 피해자가 심한 반항을 했을 것이라는 전문가의 추측이 따른다. 뒤이어 피해자가 평소 술을 마시면 과격해지는 경향이 있었다는 주변 증언을 보여 준다.
피해자가 평소 어떤 성정의 소유자였는지는 이 방송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피해 당일, 사건과 관계된 피해자의 행동 양식이나 평소 습관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럴 경우 시청자에게 피해자는 (편의상 가명으로 지칭한다고 하더라도) 익명의 피해자일 뿐, 감정이입이 이루어지는 ‘캐릭터’로 느껴지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말하는 방식이다.
이 방송이 말하는 방식은 되도록 시간 순서대로, 차근차근 상세하다. 비슷하지만 사건이 비교적 작고 덜 복잡한 <궁금한 이야기 Y>의 경우에는 주로 반전을 이용해 말한다. 가해자인 줄 알았던 사람이 피해자였거나, 쌍방과실이었거나, 알고 보니 사정이 있었다는 식이다. 그에 반해 <그것이 알고 싶다>는 괜한 트릭을 써서 복잡도를 높이려 하지 않는다. 복잡해질 경우에는 도식을 이용해 이해를 돕기도 한다. 이것이 이 방송이 취하는 태도다.
앞서 ‘제주 이 변호사 피살사건’은 두 명의 제보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평소라면 이 변호사의 아들(제1 제보자)의 인터뷰로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피해자의 친족 인터뷰는 없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제보자, 이 변호사 살인 교사범(제2 제보자)의 인터뷰에 비중이 매우 크다.
제2 제보자의 자백은 이렇다.
제주의 유명한 조직폭력배 무리인 유탁파의 두목이 유탁파의 일원이었던 자신에게 이 변호사에게 ‘겁만 주라’고 사주했고, 그 이야기를 당시 친구였던 부산 갈매기에게 말하자 자신이 대신 처리해주겠다고 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이 잘못되어 이 변호사가 사망했다. 이후 부산갈매기는 자살했고 자신은 죄책감에 빠져 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거짓은요, 시간이 지나면 말이 앞뒤가 안 맞아요.”

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이유는 따로 있다. 당시 아무리 찾아도 흉기를 특정할 수 없었으나 제2 제보자의 증언에 따라 특수 흉기를 제작하니 피해자의 시신에 남은 흔적과 매우 유사하더라는 것이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사람의 흉골은 매우 단단해서 웬만한 강도의 칼로는 절대 뚫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변호사 시신의 흉터는 흉골을 뚫고 심장까지 관통한 상태였다. 법의학자는 맥가이버칼 정도의 강도에 길이는 더 길어야 한다고 말했고, 그와 같은 칼은 시중에 없었다.
제2 제보자는 시중에 팔던 칼을 아주 날카롭게 갈아 만든 흉기의 생김새를 직접 그려주었고, 그것은 시신에 남은 흉터와 딱 들어맞았다. 이쯤에서 프로파일러가 그의 증언에 신빙성이 있다고 말을 덧붙였다.
방송은 이어 앞서 보여주지 않았던 사실들을 하나씩 꺼내 보인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제2 제보자는 살인 교사범이 아니라 살인범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부산갈매기의 가해 당일의 행적을 1)들은 것이 아니라 본 듯이 말했고, 2) 사주했던 유탁파의 두목은 당시 감옥에 있었으며, 3) 부산갈매기는 당시 수배 중이었기 때문에 그를 대신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그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사실들을 하나씩 까보였다. 그리고 제작진이 한국으로 돌아와 그의 증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어갈 때쯤 그는 다시 잠적했다. 잠적한 이유에 대해 ‘평소 마약과 도박에 빠져 있던 그가 급전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주변 증언과 ‘자신으로써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살인 사주범을 방송의 힘을 빌려 찾거나 그에게 경고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프로파일러의 추측을 덧붙이는 것으로 방송은 끝이 났다.
그의 말이 사실과 조금씩 어긋난다는 것을 보일 때마다 앞서 제2 제보자가 했던 말은 모순이 된다.

“거짓은요, 시간이 지나면 앞뒤가 안 맞아요.”

여느 회차와 달리 느껴졌던 점, 두 번째는 피해자인 이 변호사의 성정을 비교적 상세히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물론 캐릭터화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당시 이 변호사는 제주 도지사 선거 비리를 폭로한 제주 청년으로부터 선거 비리 증거물을 넘겨받았고, 그 후 1년이 훌쩍 넘어 피살되었는데, 그 사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이 변호사의 평소 성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그는 매우 정의롭고, 강직하며 대쪽같은 사람이었다는 주변인들의 증언과 그런 그라면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선거 비리를 쫓았을 것이라는 연계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증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피해자에 대한 미담이 섞여 들어가고, 그것이 아주 일관되었다. 주변인들 모두가 그에 대해 떠올리며 일관된 증언을 했다. 마치 중요한 캐릭터처럼 느껴졌던 것은 아마 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것을 덧붙이자면, 평소라면 쓰지 않았을 인서트 컷들이다.
사건 수사와 연관된 중요한 증언을 듣기 위해 은퇴한 제주 지역의 조직폭력배 전문 강력계 형사를 찾아간다. 평소라면 탁자가 마련된 장소에서 인터뷰가 이루어졌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번에는 갯바위에 털썩 앉아서 인터뷰가 이루어졌고, 그가 낚시해 잡아 올린 물고기를 커다란 부엌칼로 비닐을 벗기는 인서트도 쓰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탁파의 실세와 룸살롱에서 발렌타인 12년산을 마시며 말한다. “이 바닥에서 상도라는 게 있어요.”라고. 평소 이 방송의 톤앤매너에 익숙해져 있던 나로서는 이 두 장면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는 살면서 꽤 여러 번 ‘영화 같다’고 느낀다. 내가 관찰자인 이상 뒤늦게 알게 된 사실만 있을 뿐 반전은 없다. 뒤집힌 순간은 나 아닌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삶을 본떠 만든 영화를 두고 영화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선형으로 흐르는 우리의 삶이 종종 뒤집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그 뒤집힌 순간이 낯설 때마다 영화 같다고 감탄하는지도. 그리고 그 낯선 순간을 보러 영화관에 가는지도 모르겠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헤이든
"유탁파는 ‘유성 탁구장'의 준말이래요. 이것도 영화같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