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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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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참 선선하다. 나는 일주일 중 하루를 쉰다.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애틋한지, 집에만 있고 싶다. 그 날도 창문을 활짝 열어 가을바람을 느끼며 집에서 쉬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아빠와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구름이 껴서 날이 밝지는 않았지만,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한적한 마을을 지나며, 저 천이 어디를 둘러 흐르는지, 여름이 되면 이 다리 밑에 얼마나 사람이 바글바글한지, 저수지에서 물이 얼마나 많이 빠졌는지에 대해 보고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 도립공원에서 관리하는 곳에 주차를 했다. 화장실을 나오니 등산로 안내판이 보였다. 아빠도 그걸 보고 있었다.
햇살은 여전히 구름에 가려져 있고 바람은 선선했다. 안내판을 보니 제일 긴 코스가 2.5km, 제일 짧은 코스가 0.8km였다. 저 정도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지만, 그때의 나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완만해 보이는 길과 경사가 심한 길이 있었는데 아빠가 경사가 심한 쪽으로 가버렸다. 안내판에는 길이 하나뿐이었으므로, 저 길이 맞나 보다 하며 따라갔다. 그리고 후회했다.
새벽에 비가 온 터라 땅이 살짝 젖어 있었고, 경사가 매우 심하기까지 했다. 이게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고? 아빠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리로 다니는 거야? 이게 길이야? 비가 많이 왔을 때 흙이 쓸려가 나무뿌리만 남아 길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어때? 하며 (실제로는 숨소리가 매우 거칠어 단어 하나하나에 헉헉거렸다.) 아빠를 애타게 찾았으나, 아빠는...아주 멀쩡했다. 나보고 조심히 따라오라며 앞서가다가, 내가 몇 번 미끄러지자 이제는 내 뒤로 와 나를 보호하며..계속 걸었다.
몇 번 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건 걸어내려가는 게 아니라 굴러가야 할 판이였다. 아빠는 내려가는 것보다 정상을 찍고 완만하게 내려오는 게 더 안전할 거라고 했다. 아빠의 말이 그럴듯할 정도로 경사가 심했기 때문에 계속 걸었다.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고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지만, 집에 너무 가고 싶었기 때문에 계속 걸었다. 물론 나는 가면서도 아빠 지금이라도 내려가는 게 낫지 않을까? 몇 번이고 말했지만... 너무 많이 올라왔다는 걸 깨닫고 이를 악물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빠는 조금만 더 가면 끝이라고, 저기 하늘이 보이지 않냐며 나를 다독였고, 나는 남은 힘을 다해 발을 옮겼다. 그리고 벤치! 벤치가 보였다! 아빠 벤치야! 와! 하고 가까이 갔더니, 벤치와 안내판이 보였다. 현위치, 목표까지 반도 못 온 지점... 너무 허탈하고 어이없었지만, 더는 올라갈 수 없었다. 완만한 길로 내려가려 올라가다가 넘어지거나 지쳐 쓰러질 판이었다. 아빠, 여기서 사고 나면 헬기 불러야 해... 아빠와 나는 기념사진을 찍고 왔던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갈 때는 올라갈 때보다 덜 힘들었지만, 훨씬 위험했다. 나는 쉽게 미끄러지는 일반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지팡이도 없고, 땅은 미끄럽고, 경사는 심했다. 발을 디뎠는데 발밑에 있던 돌멩이가 쭉 미끄러지며 나도 미끄러졌다. 돌멩이가 데구르르 굴러가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무섭던지. 진짜 영화에서 절벽에 매달렸을 때 돌이 굴러가는 소리 같았다.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뎠는지 모르겠다. 내가 앞서가고 아빠가 내 손을 잡은 채 뒤에서 따라왔다. 아빠가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쭈욱 미끄러져 크게 다쳤을 것이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어깨도 아프고 안 미끄러지려고 안간힘을 쓰니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아빠 막 무서운 산에서만 사람이 다치고 죽는 게 아니야. 봤어? 나 또 미끄러졌어. 내 신발 밑창을 봐, 내가 다리에 힘이 없는 게 아니라 미끄러질 수밖에 없어! 다리로 내려가느니 엉덩이로 내려가는 게 더 낫겠다! 등등의 헛소리를 한 끝에 겨우 산에서 내려왔다. 마지막에 내려올 때도 비에 젖은, 이끼 낀 돌멩이 때문에 미끄러지고 돌에 부딪히고 힘들었다. 아빠는 등산은 괜찮은데 이런 나 때문에 힘들었다고 앓는 소리를 하셨다.
다음에는 이런 경사 심한 곳 말고 완만한 곳으로 가보자고 하신다. 차라리 난 짧고 굵은 게 좋은데... 힘들지만 이번처럼 왕복 1시간이 딱인데... 아빠가 자꾸 3시간 코스를 말씀하신다... 아빠...그건 그것대로 죽음의 등산 아닐까....?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김청귤
"이번 주말에는 트레킹화 신고 등산갑니다...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