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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나의 포부 - 해석하는 힘을 기르기

분류
운영멤버
스토리PD
작성자
2020년 12월 월간 안전가옥, 운영멤버들은 "2021 나의 포부"를 밝혀봅니다. 놀랍고, 아쉽고, 화도 나고, 다사다난하고 기묘한 2020년. 그리고 그 해를 뒤로 하고 온 2021년 새해. 여러분의 포부는 무엇인가요?
제가 안전가옥에 들어와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한 지도 일 년이 되어 갑니다. 지나 온 시간에 비해 여러 가지 경험이 무겁게 다가와서 그런지, 더 오래된 것 같은데 또 그렇지도 않네요. 저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서 여러모로 후발주자입니다. 뒤늦게 이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어떨 때는 경직되기도, 어떨 때는 힘이 과하게 들어가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읽는 것과 보는 것에 몰두했던 것 같아요.
후발주자가 게임에 임하는 자세는 뭘까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후발주자에겐 유연함과 자기 안에서 해석할 힘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 같아요. ‘장르’라는, 제가 열어야 할 커다란 문 앞에서 서성일 때마다 저는 유연함과 내 안에서 해석할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시시때때로 하곤 합니다.
작년 한 해는 영화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서 새로운 영화를 보기는커녕 영화관 근처도 제대로 못 가봤는데요. 몇 편 보지 못한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찰리 코프먼 감독의 <이제 그만 끝낼까 해>였습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과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각본을 쓰고, <시네도키, 뉴욕>을 연출한 감독입니다.
처음 이 감독이 연출한 <시네도키, 뉴욕>을 봤을 때가 떠오릅니다. 좋게 말하면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지만, 수많은 상징이 곳곳에 깔려 있어서 그보다 더 많은 물음표를 남겼던 아주 난해한 영화였어요. 각본가로 참여한 여타의 영화들만 봐도 좀 특이한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이죠. 그런데 그런 찰리 코프먼 감독의 새로운 연출작이라며 넷플릭스에서 추천받았어요.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어려운 마음이 떠오르다가 종국엔 호기심이 일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영화에 비하면 한 번도 쉬지 않고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영화 경험이었습니다.
심리 공포 영화로 분류되는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정통 장르 영화는 아니지만 불편하고 기괴한 느낌이 자욱하게 깔려 있는 영화입니다. 상당히 영화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적이라 함은 영화로 구현할 수 있는 무언가, 영화로 할 수 있는 혼란스러움을 보여주는 영화였다는 점에서 영화적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갑자기 찰리 코프먼 감독의 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건 영화를 본 후 찾아본 감독의 인터뷰 영상 때문이에요. 장르를 품으면서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는 이런 작품을 만드는 감독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다루는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드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찾아본 영상에서 감독은 마치 간헐적으로 엑셀 페달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는 것처럼 빨랐다가 느렸다가 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I really bother myself with any expectations. I don’t I never do and I didn’t in this case. and I don’t think about genre. I mean there are a couple of genre things in that carried over from the book because I  like them. but I feel like they’re somewhat subverted in the movie without talking too specifically about that they are. I feel like i‘m not using them that way but so I don’t think about the genre at all I think about what the dynamic is between the characters.”
감독의 말 중에서도 ‘장르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캐릭터 간의 역동성에 집중한다’는 말이 제 마음속에 깊이 남았어요. 이런 것이 유연함이 아닐까 생각해요. 어떤 관점에서는 장르적이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는 방식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장르라는 것도 무대를 뛰노는 캐릭터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긴장과 이완의 순간을 공유하는지, 그래서 이야기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는지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저는 경직되려고 할 때마다 이 말을 꺼내 보기로 했습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유연하게, 그러면서 넓은 시야를 지닌 채 이야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제 그만 끝내려 해>의 로튼 토마토 총평에서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라는 이상향적인 말을 꿈처럼 품으면서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헤이든
"모두 지난해보다 나은 해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