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겨 보고 있는 프로그램인 채널A의 ‘금쪽같은 내 새끼’. 오은영 박사님이 육아법을 코칭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는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약간 다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에서는 방송 내내 상단에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의 이름을 박제시키는 반면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는 아이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 방송에서 육성으로 이름을 말한다 해도 자막에는 모두 ‘금쪽이’로 통칭한다. 몇 년이 지나도 인터넷에 문제아로 낙인이 찍혀 돌아다니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몇몇 아이들을 떠올려보면 ‘금쪽이’ 제작진의 선택이 탁월하다는걸 느낀다.
최근 만난 친구도 ‘금쪽이’의 애청자였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주제로 흘러갔다. 비혼, 비출산을 고집하는 나도 가정을 꾸려 화목하게 살고 싶어하는 친구도 결론은 같았다. 아이 를 낳고 키우는 일은 너무 어렵다는 것. 딱히 정답도 없고 사랑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니 까마득하게 먼 얘기처럼 느껴질 수 밖에.
어떤 신념과 경제력을 떠나서도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한 생명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너무 무섭다. 외모부터 성격, 체질, 내 평생 고질병인 알레르기성 비염까지도 물려주게 될 가능성은 내 의지랑 상관없다고 치자(물론 이것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지만) 그렇다면 태어난 그 이후에는..? 마음 같아서는 언제나 아이의 행복을 바랄 것이다. 다만 안정적이던 경제사정이 갑자기 나빠질 수도 있고 아이 앞에서 남편과 큰 소리로 싸울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다짐과는 다르게 아이를 가장 힘들게 하는 원인도 원망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부모를 원망하는 순간이 있었던 것처럼.
부모님과의 관계가 나쁘지는 않다. 위에 적어놓은 것들을 보면 꽤나 불행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지극히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다. 나의 부모님은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다 하고 있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 앞에서는 부모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삶은 축복이자 놀라움의 연속이고, 생의 경이로움에 대해 누군가 백날 얘기해도 와닿지 않았다. 나에게 삶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주한 세상일 뿐이다. 물론 이미 주어진 삶이니까 열심히 살고 있기는 하나, 탄생 이전에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나는 세상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대화를 마치고 영화를 보러갔다. 당연히 마스크도 끼고 손소독과 QR체크를 한 후 일행이지만 한 칸 거리두기까지 한채로 관람했다. 올해 첫 영화로 선택한 영화는 디즈니 픽사의 <소울>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약간 머쓱한 채로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갔다. 그래.. 미혼남녀가 태어나지도 않은 애의 삶이 어쩌구 하는건 너무 쓸데없는 걱정이지.. 그래도 나름 살만한 인생인데..
스포일러 방지선
주인공인 조 가드너가 존경하는 뮤지션인 돌로레스. 늘 꿈꿔왔던 그와의 공연을 마치고 공허한 기분을 느끼는 조에게 돌로레스는 젊은 물고기와 나이 든 물고기 이야기를 해준다. 바다를 찾아 헤엄치던 젊은 물고기는 나이 든 물고기에게 바다는 대체 어디있냐고 묻자 나이 든 물고기는 ‘여기가 바다’라고 답한다. 조는 돌로레스의 말을 듣고 잠시 가만히 서있는다.
물고기는 바다를 헤엄치고 있어도 바다인지 모른다. 젊은 물고기는 어부에게 잡히고 나서야 자기가 있던 곳이 바다임을 깨닫는다고 한다. 하지만 소울에서 돌로레스는 조에게 뒤에 젊은 물고기가 어떻게 됐는지 구구절절 설명해주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조는 앞서 22와 함께한 하루를 돌이켜보고 그 의미를 깨닫는다.
가지고 있던 것을 잃고 나서 그것의 가치를 깨닫는 구조의 이야기는 많다. 소울은 그런 식으로 일상에 대한 가치를 느끼게 하지 않았다. 억겁의 시간을 산 보다 더 염세주의적인 22의 시선으로 바라 본 세상은 우리의 일상이 바로 그렇게 찾아다니던 바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했다. 돌로레스가 조에게 끝까지 말하지 않은 이유는 직접 보고 느끼고 깨닫으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앞선 내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아이를 낳는건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갑자기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한 번쯤은 살아볼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다. 22가 두려움을 떨쳐내고 결국엔 지구로 향하는 것처럼 내 영혼도 큰 결심을 하고 지구에 왔으니 잘 살아봐야지. 연초에 첫 영화로 소울은 안성맞춤이다. 이 감동이 앞으로 얼마나 유지될지는 모르겠으나..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최수진
"소울 참 재미있는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