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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박서련
“언제부터 그렇게 아팠어요?”
글쎄요 언제부터라고 해야 하지. 활기 있고 친근한 미소를 띤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물으셨고, 나는 그가 볼 수 없는 나만의 회상 씬을 몇 장면 돌려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밥 먹을 때마다 허리가 아픈 지는 2주 정도 됐던가? (참고로 나는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는다. 집에 식탁이 있기는 하지만 식탁을 조리대 겸 조리 도구 수납 공간으로 변용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워 스위치를 하면서 음 아무래도 이 자세는 허리에 무리가 좀 가는 것 같구나, 생각한 지 한달 정도 지났던가? (어떤 자세냐 하면 똑바로 누운 상체와 옆을 보고 누운 하체의 결합, 그러니까 인간 꽈배기같은 자세였다.)
물론 가장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바로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의 통증이었다. 친구들과 더블침대 두 개가 놓인 방에서 자다가 몸을 일으켰는데, 나는 일어났지만 허리와 골반의 연결부는 아직 안 일어난 것 같은 느낌. 딱 그 순간에는 아직 견딜 만 했기 때문에 아하 요 녀석(아플 때 아픈 부위에 인격을 부여하는 습관은 내게만 있는 게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또 말썽이네, 생각하며 침대 밖으로 다리를 내밀고 허리를 숙여 옆 침대를 짚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 순간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녀석의 비명은 소리가 아니고 등줄기를 오르내리는 방사형의 끔찍한 통증이었다. 나는 비명을 못 질렀다. 앞으로 숙이지도 뒤로 자빠지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옆 침대에 누워있는 친구를 굽어보며 이 순간 얘가 기적처럼 눈을 뜨고 헉 서련아 너 왜 그래 하면서 날 일으켜 세워주든지 눕혀주든지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얼마나 오래 앉아있는 편인가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프리랜서고 글을 쓴다고 했으니 너무 오래 앉아있으면 좋지 않다는 조언을 해 주려고 깐 밑밥같은 질문이었을 텐데, 앉아서 글을 쓰는 시간보다 침대에 누워서 글을 쓰는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이었다. 배 밑에 베개를 깔고 하늘을 나는 히어로처럼 앞으로 두 팔을 뻗은 자세로. 그렇다고 질문에 충실한 답이랍시고, 별로 앉아있지 않습니다 라고 할 수도 없고…… 내가 머뭇거리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X-레이 사진을 확대(라고는 하지만 실물만큼 확대하지는 않고) 해서 짚어가며 문제점을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모니터 위를 짚어가며 설명하는 걸 보니까 그게 무슨 지도처럼 느껴졌고 사실은 그것이 다름아닌 내 몸이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약간 국가나 지방같은 게 된 것처럼 쑥스러운(왜죠?) 마음이 들었고…… 즉 선생님께서는 열심히 설명해주셨는데 속으로 다른 생각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때 했던 다른 생각에는 십여 분 전에 그 사진을 찍으러 촬영실에 들어갈 때 촬영실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에 대한 것도 섞여 있다.
“교통사고예요?”
왜냐하면 평소라면 또는 척추가 건강한 사람이라면 20초 안에 슥 지나갈 만한 로비와 촬영실 사이 거리를 1분 넘게 걸어서야 완주할 수 있었기 때문, 아주 천천히 울면서 걸어오는 나를 기다리다 못해 촬영실 선생님께서 부축하러 오셔야 했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께서 반복적으로 하는 말들의 맥락도 촬영실 선생님의 질문과 같은 레이어에 있었다. 울고 잘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프다면 교통사고나 그에 준하는 어떤 충격,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게 분명한데 왜 잘 설명을 못하는가에 대한 의문. 그런데 내게는 떠오르는 빅-계기가 진짜 없었고 척추병원 진료실 의자에 왜 등받이가 없는가 같은 원망섞인 생각만 자꾸 나서 하하 그러게요 라고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날부터 2박3일간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해서도 일주일에 한번씩 도수치료와 충격파 치료를 받았다. 치료 루틴은 단순하고 확실했다. 하루에 한 번 도수치료, 충격파 치료, 물리 치료 또는 원장 선생님(진단을 해 주신 그 선생님)의 주사 치료. 각 치료 과정의 소요 시간은 대략 20분에서 40분. 예약 시간은 그날 그날 새로 정해졌다. 그러니까 하루에 서너 시간만 들으면 되는 일종의 단기 교육과정에 참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든 치료 루틴을 수행하면 일일 수료증같은 것이 나올 것 같은 느낌. 당연히 수료증같은 것은 없었지만 저녁식사 식판을 받으면 대충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해냈다. 내가 한 일은 그냥 누워있는 것 뿐이었지만.
입원도 처음, 도수치료도 처음, 충격파 치료도 처음이었다. 때문에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되겠네, 라는 생각을 하면서 도수치료실에 들어갔는데 도수치료를 담당하는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몸에 손을 대자마자 으악 소리가 나왔다. 5분 정도 비명을 지르자 “괜.찮.아! 괜.찮.아!”라고 응원을 해 주셨다. 무슨…… 도전 골든벨 48번 문제에서 미니 칠판에 ‘얘들아 미안해’라는 메시지를 쓰고 울먹거리는 학생에게 해 주듯이. 민망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이미 아파서 울고 있었기 때문에 민망해서는 울 수가 없었다.
도수치료를 경험했으니 이제야말로 세상에 무서울 게 없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충격파 치료실에 들어갔다가 또 울면서 나왔다. 뼈에 대고 초음파를 쏘는 치료법이기 때문에 느낌이 살짝 낯설 수는 있다, 고 사전설명을 해 주셨는데, 겪고 보니 그건 정확한 말씀이기도 했고 실제 경험을 무척 축소시킨 듯한 말씀이기도 했다. 초음파 치료사 선생님은 치료 도중 “앗, 여기가 특히 안 좋으시구낭. 그럼 이 부분 위주로 지질게요?” 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는데 ‘지질’이 너무 자연스럽게 ‘조질’로 들렸기 때문에 (조지다 역시 표준어라고 하지만) 정말로 으스러지도록 조져지는 기분이 들었다.
재미있게도 도수치료사 선생님과 충격파 치료사 선생님은 서로 자기가 담당하는 치료 수단이 더 신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우, 저는 충격파 무서워서 못 받겠던데. 제가 담당하는 분들 다 충격파 무서워서 저한테만 오시잖아요.” (도수치료사 선생님) “충격파가 느낌이 좀 낯설긴 한데 집중적으로 받고 나면 확 나아지잖아요. 오래 앓는 것보다야 잠깐 느낌 이상하고 금방 낫는 게 좋으시죠?” (충격파 치료사 선생님)
어느 쪽인가 하면 두 가지 다 경험할 일이 없는 게 낫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퇴원하던 날 진료비 영수증을 들고 택시에 올라 트위터에 이렇게 썼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할 수 있다.
“급성요통 후기: 입원할 때는 세상에 허리와 나밖에 없는 것 같았고 퇴원하는 지금은 세상에 병원비 영수증과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세상에 허리와 영수증과 나 말고도 뭐가 많다는 걸 안다. 다행히도 다시 알게 되었다.
허리가 그렇게 아팠던 건 잘못된 자세로 오래 지냈기 때문, 그 빚을 몰아갚느라 그런 것인 줄을 아주 잘 알지만 아프고 나면 꼭 이렇게 생색을 내고 싶어진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박서련
“저는 지금까지 엎드려서 책을 세 권 썼고, 7월 말에 제가 엎드려서 쓴 마지막 책…… 이 세상에 나옵니다. 허리와 영수증과 저와 ⟪더 셜리 클럽⟫…… 많은 사랑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