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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계획도 없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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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니까 올해 이런 한 해가 될 줄 몰랐던 작년 연말이 떠올라요. 친구들을 만나 송년회 겸 신년회를 하고, 가족과 둘러앉아 맛있는 것들을 잔뜩 먹고, 마스크 없이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작년 연말에는 그래서였는지 새해에 하고 싶은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 내용이 뭐였는지 자세히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새해 목표 및 다짐을 다이어리 한 페이지가 가득 차도록 적었던 기억이 나요. 그중에 하나는 이런 거였습니다. 한 달에 적어도 세 번은 영화관에 가기. 하지만 실제로 작년에 영화관에 간 횟수는 한 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 정도였어요. 원래 지키기 힘든 게 새해 목표라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목표를 지키기 힘들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올해는 새해 목표라거나 다짐을 따로 적지 않았습니다. 적어봤자 소용이 없겠다는 체념은 아니었어요.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작년은 뭐든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바람에 신년에 세웠던 계획이나 목표를 이루기 힘들었을 거고, 한 번 그런 일을 겪고 보니까 장기적인 계획이나 미래지향적인 목표를 지금 당장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게 있으면 오히려 더 빨리, 자주 절망하게 되는 때도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저는 뭘 하든 구체적인 계획이 정해지지 않으면 아주 불안해하는 편이에요. 글을 쓸 때도 그렇고, 시험을 준비할 때도 그렇고, 사소하게는 여행 계획을 짤 때도 그렇습니다. 작년 초에는 갑자기 어그러진 일상 때문에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서 자주 불안해했던 기억이 나요. 처음에는 초조했어요. 한 5월까지는 언제쯤 다시 제대로 된 일상으로 돌아와서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설계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이 생활을 10개월 정도 반복하고 나니 그런 게 다 쓸데없는 고민처럼 느껴졌어요. 먼 미래를 생각하면서 살아가기에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 벅찼습니다. 일 년 단위, 월 단위, 일주일 단위로 짜던 계획은 다 집어치우고 하루 단위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오늘 할 일만 생각하니까 문제가 아주 단순해지더라고요.
그래서였다고는 하기 좀 그렇지만 어쨌든 저는 이 일련의 일들로 장기적인 계획이 없어도 불안해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원래 좀 강박이 있는 걸까 싶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요. 너무 아무 생각이 없어서 이래도 괜찮은가 싶을 정도로 아무 생각이 없어요. 이러다가도 또 미친 듯이 불안해지는 때가 오겠지만 그건 그때의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믿고 있으며... 사실 올해는 해야 할 일이 정말로 많아서 미래에 뭘 할지 고민하고 있을 틈이 없을 것 같아요. 장편소설 작업을 해야 하고, 단편소설을 최소한 네 개는 더 써야 하고... 이렇게 할 일이 잔뜩 쌓여 있는 신년은 처음 맞는 것 같은데, 항상 마감이 없는 소설을 썼던 걸 떠올리면 올해는 참 감사한 일이에요. 물론 할 일을 제대로 해내야겠지만.
이 글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 여러분도 목표나 계획에 지지 않고, 좋아하는 것들로 행복해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윤이안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어쩐지 신년 느낌이 나질 않아서 써보는 새해 다짐. 감사와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기, 그리고 좋아하는 것의 목록을 계속해서 늘려나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