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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덮치는 꿈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최수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꿈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해안가였다. 요즘같이 날씨가 아주 좋았고 사람들은 각자 신나게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평범한 풍경 속에서 난 바다 위에 떠있는 피아노를 발견했다. 그렇게 얕아보이지 않는 수심 위에 어떻게 떠있는지 궁금하진 않았다. 누군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고 난 피아노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모래사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 많던 사람들은 벌써 도망쳤는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로 덮쳐오는 파도를 피하기 위해 열심히 달렸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파도에 갇혀 바다에 빠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쫄딱 젖었을 뿐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다는 다시 잠잠해졌다.
나는 다시 피아노를 향해 걸어가지 않았다. 피아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궁금해하지 않았다. 물에 젖은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머니에 있는 에어팟을 꺼낸 것이다. 물이 들어가서 고장이 나지는 않았을까 걱정을 하며 에어팟을 열었다. 가운데 빨간불이 들어온걸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얘기가 다른 사람 꿈 얘기다. 세 문단에 걸쳐 적어낸 내 꿈은 맞다, 그냥 개꿈이다. 꿈은 영화나 소설이 아니고 바다 위 피아노와 물에 젖은 에어팟이 어떤 인과관계에서 나타난건지 해석해볼 여지가 전혀 없다. 다만 난 한동안 이 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눈 앞에 있는 진기한 광경을 두고 왜 핸드폰도 없는 블루투스 이어폰 걱정이나 하고 있었을까. 한동안 꿈에 대한 공상으로 시간을 빼앗겼다. 이상한 꿈은 별 영양가 없는 공상을 계속 낳았다.
특이한 꿈을 꾸고 일어나면 네이버에 들어가본다. 혹시나 금전적인 것과 관련된 꿈이면 복권이라도 한 장 사려고 기대를 가지고 검색을 한다. 돼지나 용같이 확실한 것들 말고 좀 애매한 꿈들. 주로 동물이 나오는 꿈은 꿈 내용에 따라서 길몽인지 흉몽인지 확실히 갈리기 때문에 필히 검색을 해본다.
‘파도가 덮치는 꿈’. 길몽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은 반대일 수도 있으니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검색한 결과. ‘진행하고 있는 일 또는 사업적인 부분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으로 인해 힘든 시기들을 보내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금전적인 길몽 외에는 꿈해몽을 믿는 편은 아니다. 대충 읽었는데 헛소리다 싶으면 그냥 ‘글쿤.’ 하고 잊어버리고는 한다. 그러다 가끔 내가 처한 상황과 비슷한 해몽을 볼 때가 있다. 이 파도가 덮치는 꿈의 해몽처럼.
모든 일이 매끄럽고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이럴 때일수록 자책을 많이 하게된다. 다 내가 부족한 탓이지. 난 대체 뭐하고 있는건지. 한심한 놈. 아니 언제는 안 한심했나. 그래서 뭘 어떻게 할건데. 머리에서 맴도는 소리들을 애써 외면한다.
애써 모른척하고 살다보면 다른 걱정이 또 떠오른다. 오늘 운동 가지 말까. 방청소 밀렸는데 언제 해야하지. 이따 저녁에 단백질로 뭐 챙겨먹을까. 아 겨울옷 정리해야되는데. 어째 아무 생각도 안하려고 회피하는 와중에도 별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구나. 그러니 파도가 치는 와중에도 물에 젖은 에어팟이나 붙들고 있지 않았나 싶다.
개꿈에 의미부여 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짓이 또 있을까. 적어도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을 모른척하고 할만한 짓은 아닌 듯 하다. 이제는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물에 젖은 머리를 바짝 말리고 해야 할 일을 하러 움직여야겠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최수진
"마스크 끼고 운동해야된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운동 가는 것을 주저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