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School! 방학이 끝나는 3월을 맞아 운영멤버들은 "나의 학창시절 콘텐츠"에 대해 적었습니다.
라떼는(?) 이 책 안 보면 안 됐다.. 싶은 학창 시절 유행했던 콘텐츠, 예민한 사춘기 시절 나를 사로잡은 그 콘텐츠, 하지만 지금은 밝히기 싫은 그 콘텐츠! 지금의 운영멤버들을 만든 콘텐츠,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SBS 대하드라마 <모래시계>를 기억하시나요.
<모래시계>는 하나의 현상이었습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실제로 그랬어요. 저는 <모래시계>를 방영하던 당시 동네 보습학원에 다니고 있었어요. 당연히 선생님을 포함해 반 모든 학생이 <모래시계> 애청자였습니다. 평균 시청률 46%, 최고 시청률 64.5%였던 드라마니까요.
주3일 수업은 10시에 끝났는데 그래서 수업이 있는 날은 드라마의 앞부분을 조금 잘라먹고 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럴 때는 다음날 학교에 가서 못 본 부분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었습니다. 주 4회(월, 화, 수, 목) 편성에, 저는 성격 급한 어린이라 주말 재방송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이겁니다.(물론 재방송도 보긴 했죠.)
날짜는 기억 안 나지만 회차는 정확히 기억나는 <모래시계> 22회 방영일, 그날도 어김없이 학원 수업이 있었고 저는 반 친구들을 대표해 선생님께 진지한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선생님, 오늘은 인간적으로 일찍 끝내주셔야죠. 백재희(이정재 분) 죽는 날이잖아요.”
선생님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고 그날 저희는 평소보다 30분 일찍 귀가했습니다. 원장 선생님께는 말하지 말라는 다짐과 함께. 여느 때보다 일찍 들어온 저를 보고도 부모님은 아무 말씀 없이 티비를 켰죠. 백재희가 오늘 죽는다는데...딸의 귀가 시간 따위야 뭐...
<모래시계>의 시대를 경험했거나 가까이 느꼈던 어른들은 이때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뜻 깊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요. 이 모든 게 처음인 내 또래의 중학생들은 이 드라마가 주는 새로운 정보에 흥분했고요. <여명의 눈동자>의 ‘일본군 강제위안부’와 ‘731부대’처럼 <모래시계>의 유신정권과 삼청교육대,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근현대사 주요사건과 윤회장(박근형 분)으로 표상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매뉴얼 같은 것은 교과서에서는 보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말하자면 <모래시계>를 보는 것은 그동안 초대받지 못했던 비밀 클럽에 가입한 기분이었어요.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또 인상적인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매우 밀도 높게 묘사되었던 점이에요. 태수(최민식 분)와 우석(박상원 분)의 아역(김정현, 홍경인)이 단 2회만 등장했다는 걸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걸요? 1,2회라는 짧은 기간 동안 두 인물은 견고하게 우정을 쌓고 가족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들을 둘러싼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이들이 사회에 어떻게 순응하고 반목할지 1,2화 아역 시절에 다 결정됩니다. 드라마의 태수와 우석이 겪는 모든 사건과 갈등은 이때 만들어진 성격과 관계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흘러가요. 아역 시절에 벌어진 일이 이야기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아역 분량이 많았다고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햇수를 헤아려 보니 <모래시계>가 방영된 지 벌써 26년이네요. 그 사이 근현대사를 다룬 드라마들은 꾸준히 만들어졌고 언젠가 제가 지나온 시대도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다음 시대가 오겠죠. 문득 최근 몇 년간 있었던 많은 사건이 떠오르는데, 그 주역의 배역은 누가 맡을지 궁금해집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조이
모래시계 외 1995년 저의 베스트 콘텐츠는 듀스! 학원 친구들이 교실에서 ‘굴레를 벗어나’ 춤 연습하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잘 지내니,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