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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보고 싶다.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김효인
여름날,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정신머리가 저 멀리 떠나버리곤 합니다. 예전엔 종종 책이나 핸드폰을 봤지만 숨 쉬는 것도 버거운 지금은 멀미가 나서 그냥 시선을 머무는 어느 곳에다 멈춰두고 한없이 멍 때리기 일쑤에요. 그러다 보면 아주 뜬금없는 질문이 나오게 되는데요. 가령 '내가 누구더라?' 같은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 먼지138386576...로서의 의미 같은 것이죠. 그럴 때는 한참 생각하다 결국 정리를 못해 '누구의 자식이고 어디서 뭐하고 사는 누구다.' 하고 대충 접어 넣어버려요.
그런 질문이 난감할 때는 따로 있어요. 바로 이야기 속 캐릭터 존재에 대한 물음입니다. 분명 처음에는 얼굴부터 발끝까지(쓸데없는 빵 취향까지) 다 정하고 이야기를 호기롭게 시작했는데요. 그럼에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여느 장면에서 여느 캐릭터가 갑자기 제게 "그래서. 나 여기서 뭐라고 해?" 라는 질문을 던져버렸을 때... 너무나 당혹스럽게도 이런 황당한 대답이 나와버리는 것이죠. 잠깐... 너... 너가 누구더라?
부끄럽지만 저는 직접 만든 캐릭터가 어떠한 상황에서 '무슨 행동을 할지 어떤 대답을 할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을 때가 있어요. 물론 고민을 조금 더 하면 떠오를 때도 있지만 정말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이런 성격의 캐릭터니까 이렇게 하겠거니 대충 넘겨 짚었다가는 반드시 이야기에 돌부리가 만들어져요. 읽고 또 읽어도 그 부분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거죠.
이야기 곳곳에 돌부리가 박히면 한동안은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버려요. 작가가 인물을 모르면 도대체 누가 알겠는가 하는 자책을 하며 괴로워 괴로워 노래를 부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광활한 우주의 먼지138386576...로서의 의미를 생각하다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이 상황을 지문으로 쓴다면 어떤 얼굴인지 어떤 포즈인지 어떻게 표현할까. 한 번에 정리되지 않더라고요. 더듬더듬 기억이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매일을 전부 들여다본 내 모습도 '지금 어떤지' 정확히 적기가 어려웠어요. 애초에 딱히 인지하면서 살지 못했다고 할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알고 지낸 지 일 년도 안된 캐릭터의 어느 순간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괴로워할 문제가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초면에 알면 얼마나 안다고 지문이 술술 써지는 요행을 바랐을까요.
그렇게 지난 6월, 저는 이 우주 속 제 손으로 새롭게 만들어낸 누군가와 친해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이야기 속 그 얼굴이 종종 뭉그러지기는 하지만 이제는 괴로워 괴로워 노래는 부르지 않게 되었답니다. (무슨 전래동화 결말 같네요.)
이제 앞으로는 김범수님의 노래를 부르는 마음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려고요.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김효인
"그렇게 글을 쓰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