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뭘 했다고 벌써 3년
뭐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그러니 칼로 자르듯 구획을 나누기도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제가 좀 그런데 의미 두고 괜히 생각하곤 하는 사람입니다. 그 있잖아요 나이 앞자리 바뀌거나 연말연시 같은 때 괜히 (딱히 뭐 생산적인 걸 하지도 못할거면서) 메모장 꺼내놓고 끄적거리는 사람. 그런 제가 요새 또 그런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매년 이 즈음이 그런 시기였네요.
2017년 6월 1일. 법인격 ‘주식회사 안전가옥’이 태어난 날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바로 안전가옥의 창립기념일이죠. 올해 창립기념일은 또 ‘3주년’이라는 쓸 데 없는 껀수만 더해져서 더 좀 괜히 의식하게 되는 느낌입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더라도 안전가옥 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는 질문에 답할 때면, 아 내가 안전가옥이라고 하는 이 조직을 이 사업체를 시작한지 3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거죠. 순간 아련-한 느낌과 함께.
커리어에서도 3년차에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등등의 말들이 많은 걸 보면, 3년이라는 숫자가 좀 묘한 감각을 가져다주는 듯 합니다. 어떻게 보면 되게 짧은 찰나의 시간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뭔가의 일가를 이루어낼 만한 혹은 그의 기반을 다질 수도 있을 만한 그런 기간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3년 밖에 안되었구나 싶을 때도 있다가 3년이나 되었구나 싶기도 하다가, 아무튼 그렇습니다. 요즘.
주류를 판매하는 일반음식점
2017년 6월의 저는 거의 카페 사장 모드였습니다. 도면을 보고, 인테리어 업체와 컨셉을 이야기하고, 집기와 가구를 골랐죠. 강남 교보문고에 가서 책을 장르 쪽으로 000권을 (일시불로) 사겠노라 했더니만 은밀한 통로로 들어가 B2B 상담을 하게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고, 커피 원두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요새 경쟁이 치열해져서 레시피 상담에 기기 유지보수까지 도와준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휴게음식점’과 ‘일반음식점’의 차이도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 우리가 아는 카페 류의 점포들은 휴게음식점인데, 여기서 ‘주류’를 판매하는 순간 그 이상의 업태로 넘어간다는 것을요.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사오기 전의 안전가옥에서는 (병)맥주를 팔았습니다. 제가 거의 떼쓰듯 맥주 팔아야 한다고 우겨서, 안전가옥은 아직 법인등기상 ‘일반음식점’의 업태를 갖고 있습니다. 파스타집이나, 감자탕집처럼 말이죠.
최근 며칠 새 성동구 인근 식당들에서 바이러스 확진자들이 확인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동구 보건소에서는 성동구 산하 음식점 점주들에게 ‘종업원 마스크 착용 필수’ 등의 안내 문자를 내보내고 있어요. 이사온지 네 달이 넘어갑니다만, 아직 서류상으로 저는 ‘일반음식점’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최근 보건소에서 문자가 부쩍 자주 옵니다. 그럴 때마다 3년 전의 이맘 때를 문득 생각하죠. 아- 맞네, 나 이런 일도 했었는데.
스토리 프로덕션
작년 3월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에 나가는 날 당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나름 메이저(?) 매체에 나가는거다보니 좀 생각은 하고 나가야 할 것 같아서 ‘우리를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요’하는 화두를 던져 받았던 답이 '스토리 프로덕션'이었습니다. 픽션을 기획하고 개발하고, 책으로 엮어 유통하는 것 뿐 아니라더 다양하게 트랜스를 추진하는 조직, 스토리 프로덕션. 듣자마자 맘에 쏙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안전가옥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쓰는 말이에요.
사업의 방향과 수행하는 과제, 조직의 구성과 일하는 방식까지 ‘스토리 프로덕션’이라는 비전 아래 차근차근 조정했습니다. 작가님들과 IP를 기획하고, 개발하기로 계약하고, 원고를 개발하고 유통하죠. 2018 여름 공모전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고, 그 때의 수상작들을 엮어 나온 저희의 첫 책이 작년 2월에 나온 <냉면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간 정들었던 공간과 그 공간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들을 정리하는 작업도 시작했죠.
2017년 6월에 법인을 설립해, 9월에 공간을 정식오픈했습니다. 2018년 수십 차례의 살롱과 공모전을 시작했죠. 공간을 세팅한 2년 만인 2019년 여름 일반영업을 종료하고 정리 작업에 들어갔고, 스토리 프로덕션으로의 피벗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첫 책이 나온지 15개월 여가 지난 2020년 현재, 최신간 < 밀수: 리스트 컨선>을 포함한 안전가옥의 출간 종 수는 11종. 종이책 기준으로 누적 판매 부수는 1만 부를 넘어갑니다.
이제 고작 3년
요새 괜히 마음이 좀 급했던 것이 있어요. 돌이켜보면 (2020년대의 시작이라는 연도에 더해) 이 ‘3주년’이라는 것에 좀 매몰되어 있던 것이 있었던 듯 합니다. '나 3주년스 삼십팔살인디'.. 잠깐만 아니 벌써 3년? 아니 벌써 삼십팔살? 이런 생각이 드니까 괜히 마음이 급했어요. 앞으로 가야 할 것들이 괜히 멀리 있어보이고, 그걸 하기 위한 시간은 더 빠르게 가버리는 것만 같고, 제 컨디션이나 역량은 성에 안차고, 그 와중에 코로나는 코로나고.. 등등
근데 최근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한 방 맞았지 뭡니까. 안전가옥은 3년 밖에 안된 것 아니냐고. 피벗 감안하면 그보다도 더 얼마 안된 것 아니냐고. 그렇더라고요. 나름 꽤 빠르게 사업을 재조정해왔고,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모으고 만들어가고 있으며, 책도 열심히 유통하고 성과도 나쁘지 않습니다. 웹툰화/ 영상화도 진행했고, 공모전에는 점점 더 좋은 작품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업계에서 조금씩 알려지는 듯도 하고요.
마음 한 켠에서는 뭔가 더 막 팍팍 진행되고 성과가 만들어지는 신기루를 찾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공간에 생각보다 애착이 컸던건지 떠나온게 짠한 만큼 그 만큼 더 뭔가를 해야지 하는 생각도 해요. 하지만 동시에 3년의 시간은 짧고 빨랐던 시간이었다는 것도 압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 모두 빠르고 멀리 올 수 있었다는 것도 말이죠. 그리고 그건 안전가옥이라는 조직의 역사, 에너지가 만들어온 감사한 것이라는 것도요.
이 자리를 빌어. 안전가옥과 함께해준 전/현직 운영멤버 열여덟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뤽
"올해 창립기념일은 쉬었습니다. 휴무일인 월요일이라...... (내년 창립기념일은 화요일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