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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부능선

분류
파트너멤버
작성자
시아란
1.
장편원고 초고가 6월 중에는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원고가 대략 얼마 정도의 분량으로 어떻게 마무리 될지가 가시권 안에 들어왔습니다. 정상이 보입니다. 네, 9부 능선에 이르렀습니다.
2.
산을 오르다 보면, 한참 힘든 산길을 올라왔는데도 정상이 도무지 보이지 않아서 불평을 하게 됩니다. 늘 “조금만 더 가면 돼” 라는 격려를 받으며 꾸역꾸역 걸어가곤 합니다. 그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은 사실 정상까지 반도 오지 않았을 때부터 듣게 되지요. 참 기만 가득한 격려입니다.
만약 산을 오르다 정히 힘이 빠진다면, 올라가는 것을 멈추고 하산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겠어요. 도저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해서 산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중간쯤에서 발을 돌리는 사람들은 제법 있습니다. 반대로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아까우니까 그래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올라가 보자고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도 있겠죠. 그렇게 계속해서 어느 정도 걸어 올라가다 보면, 이제 지쳐서 발걸음을 돌리려 해도 내려가는 길이 아득한 지점을 지나게 됩니다.
9부 능선은 그조차도 넘어선 지점입니다. 이제 여기서 하산하는 것은 정상을 딛고 하산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고생길이 됩니다. 정상은 눈에 보이고 있고, 조금만 더 가면 닿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걸어 올라온 다리는 후들거리고, 마음 속에서는 타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칩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충분히 애썼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싶어집니다.
그래도 이제는 눈에 보이는 정상을, 여기까지 왔는데, 오르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아깝잖아요.
3.
대학원 재학 중이던 무렵 학회에서 종종 뵙던 어느 외국 교수님께서는, 대학원 생활은 마치 불이 꺼진 터널을 걷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내 눈 앞이 전혀 보이지 않고, 내가 얼마나 걸어왔는지도 전혀 알 수 없지만,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만큼은 환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이고, 계속해서 걸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빛 속으로 뛰어들며 터널을 나서게 된다고.
장편 원고 작업 내내, 정말 대학원에서 졸업논문 쓰던 그 때의 기분만 같았습니다. 블랙홀 속으로 뛰어들어 영원히 적색 편이되는 잔상처럼, 써도 써도 끝나지 않는 괴물을 붙잡고 있다고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끝이 보이고, 끝나는 곳까지의 거리도 보이는군요. 출구의 눈부신 빛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터널의 끝은 매우 가깝습니다.
4.
산 정상에 오르고 나면 하산을 해야 합니다. 초고를 마치더라도, 방대한 원고를 개고하고 교정하는 일들이 남아 있겠지요. 올해 늦게나 내년 초에는 독자 여러분들께 다가갈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일단 그것도 하산을 시작해 봐야지만 알 것 같네요.
정상이 눈 앞에 있으니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뒷일은 그 다음에 생각하죠.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파트너 멤버 시아란
"기록상 월간 안전가옥을 연재한 지 만 1년이 넘었습니다. 시아란, 고산병에 쓰러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