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월간 안전가옥, 운영멤버들은 "나.. 여기 가고 싶다..."라는 주제로 썼습니다.
환전, 구글 맵, 면세점, 기내식.. 전생의 무언가처럼 아련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이네요.
집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길었던 올 한 해, 이야기 속 그 곳으로 떠나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상 콘텐츠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헤이든은 이 곳에 가고 싶다
<윤희에게>의 오타루 다리
영화
이유는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울지 않게 된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아마도 내 안에서 공감의 폭이 좁아진 것 같은데 그걸 다시 되돌리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몇 달 전 나도 모르게 참지 못하고 울어 버리게 만든 영화가 있었다.
나는 홋카이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눈이 그렇게나 많이 내려서 길바닥에 열선이 깔려있다는 곳, 눈 때문에 현관문이 안 열리기도 한다는 곳. 눈이 만들어 놓은 경관 덕에 추위마저도 잠시 잊는다는 곳.
옛 연인에 대한 기억을 묻고 산 지 오래인 윤희는 사는 것에도 무뎌진 여자다. 휴가를 못 내준다는 직장을 그만두고 뒤돌아서는 사람의 마음은 충동이 아닐 것이다. 길 가다 무심코 싸구려 머리핀을 사는 마음같은 것이라든가, 홧김에 튕겨 나가는 마음과는 다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큰 것을 놓아버리면 놓아버리는 일도 익숙해지고, 처음 느낀 생생한 아픔만큼 아프지도 않다. 나는 윤희에게서 그런 사람의 모습을 본 것 같다.
윤희가 오타루에서 지나간 사랑과 재회한 장소는 오타루 운하의 아담한 다리 위였다. 다리 위에서 걸음을 멈춘 사람들은 그 자체로 의미를 만든다. 사람들이 지나치는 그 다리 위에서 윤희와 준, 두 사람만이 멈춰있다. 이로써 오타루 다리는 두 사람의 무대가 된다.
로맨스 영화 속에서 ‘다리’는 참 특별하다. 다리는 연결과 단절이 모두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다. 우리는 다리 위에서 포옹할 수 있고 저편을 향해 함께 걸을 수도 있고 영영 뒤돌아 갈 수 있고 함께 뛰어내릴 수도 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로즈맨 브릿지가 그랬고, <퐁네프의 연인들> 속 퐁네프 다리가 그랬고 오작교가 그랬고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알렉상드르 3세 다리가 그랬다.
생각해보면 다리와 사랑은 참 많이 닮았다. 다리 위에 멈춘다는 것은 그래서인지 두 사람만의 만남 혹은 헤어짐의 무대로 다리가 종종 등장하는 것 같다.
나는 윤희처럼 다리 위에서 재회할 사람이 없다(그게 참 다행이다). 하지만 윤희와 준이 다시 만났던 그 다리 위에는 한번 가보고 싶다. 다리 위에 멈춰서고 싶다. 저편의 어느 곳으로 서둘러 가지 않고 그 위에 서서 음악 한 곡 딱! 듣다가 따뜻한 커피 한잔하면 참 좋겠다.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헤이든
"트래블버블 손꼽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