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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클레어의 말괄량이 쌍둥이>의 이자벨과 패트

분류
운영멤버
스토리PD
작성자
2020년 9월 월간 안전가옥, 운영멤버들은 "다시 태어난다면 이 캐릭터로"라는 주제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나는 못하는 말을 하는 '사이다캐'라서, 돈이 많아 보여서, 행복해 보여서, 초능력이 있어서, 천재라서 등등.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혹은 남은 여생을 바꿀 수 있다면, 이 사람 혹은 이것(?)으로 살고 싶은 그 캐릭터에 대해 적어봤습니다. *대상 콘텐츠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조이는 다음 생에

<세인트클레어의 말괄량이 쌍둥이>의 이자벨과 패트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저는 고치기 힘든 병에 걸렸습니다. ‘영국병’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출생과 핏줄, 언어 그밖에 모든 것이 저의 국적을 증명하지만, 제 영혼의 고향은 8,700km 떨어진 해가 지지 않는 섬나라에 있다고 믿어 마지 않는 병이에요. 일요일이면 장미 정원이 근사한 할머니 집에 놀러 가 할머니가 직접 만든 케이크와 레모네이드를 실컷 먹었던 가짜 추억이 떠오르고,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훗날 나에게 재산을 물려준 부자 독신 고모가 브라이튼 해변에서 살고 있을 거 같고…
부모님이 사준 한국출판공사판 소년소녀 세계명작추리문고 <명탐점 호움즈>를 읽은 후부터 이 병은 시작됐어요. 1년 내내 안개가 끼는 나라가 있다고?(궁금해!) 경찰도 못 푸는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라고?(죽인다!) 프록코트, 파이프, 페니, 실링 같은 낯선 단어도 근사하게 들렸고, 언제나 마차를 타고 범행 장소로 연주회장으로 달려가는 홈즈에 대한 묘사를 읽다 보면 어느새 저도 마차에 몸을 싣고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는 기분이 되었어요.
그 후 저는 <소공녀 세라>를 만나게 됩니다. 이 책에서 ‘영국 기숙사’라는 것을 알게 됐죠. 어떤 고난이 닥쳐도 고귀한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면 막대한 유산 아니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며 나도 기숙사에 들어가서 세라의 극한 체험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지금 다시 읽는다면 문제적인 장면이 분명히 많을 것 같은데 저의 추억을 보호하기 위해 다시 읽지 않겠습니다.
홈즈와 세라가 제 영국 판타지에 큰 공헌을 했지만, 이 두 사람으로 굳이 살아보고 싶진 않아요. 홈즈는 죽을 고비를 너무 자주 넘기고, 약물 중독자죠. 세라도 지금의 제가 감당하기엔, 특정 상황에 지나치게 과몰입하는 캐릭터고요.
제 영국 기숙사 로망을 실현하려면 에니드 블라이튼의 <세인트클레어의 말괄량이 쌍둥이> 속 패트와 이자벨 정도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 역시 어린 시절 지경사의 소녀 명랑 소설 시리즈로 만났습니다. 비싼 사립학교에서 철없이 지내던 쌍둥이 자매가 그전보다는 소박한(그러나 제 눈엔 충분히 그럴싸한) 기숙학교로 진학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인데요. 여섯 명이 한방에서 지내는 기숙학교에서 아이들은 수업이 끝난 후에도 도서관에 함께 모여 공부를 하고, 생일이 되면 집에서 보내준 맛있는 것이 잔뜩 든 바구니를 받고, 사감 선생님 몰래 한밤의 파자마 파티를 즐깁니다. 쌍둥이 자매는 처음에는 이전 학교에서와 달리 1등도 못 하고, 주목도 받지 못해 실컷 비뚤어지려 하지만, 의외로 단순하고 마음 약한 캐릭터들이라 점점 학교생활에 적응하며 성장해나갑니다.
다시 한번 태어나 어떤 캐릭터로 살아야 한다면, 전 딱 이 정도가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소한 일에 웃음을 터뜨리고 새로운 발견을 하고, 실수를 해도 못난 마음을 먹어도 언제든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그래서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다음 생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월간 안전가옥 한 달에 한 번, 안전가옥 멤버들이 이 달의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운영멤버 조이
"‘레모네이드’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도 이 책에서인데, 어느새 레몬을 스퀴저로 짜서 탄산수와 섞어 먹는 으른이 되었네요..."